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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된 척하는 그림 한 점 — 컬렉션에 섞인 '옛 양식' 작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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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목록을 훑다 보면 비슷하게 생긴 그림들이 눈에 띈다. 금박 바탕에 성모와 아기 예수, 양옆에 성인들. 14~15세기 이탈리아에서 대량으로 그려진 형식이다.

그런데 그중 한 점의 제작 연도가 이상하다.

15세기 양식,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제작

「성모자와 성 막달라 마리아,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정보란에 적힌 내용이다. 15세기 그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400년쯤 뒤에 그려진 작품이라는 뜻이다.

왜 이런 그림이 만들어졌을까

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에서는 초기 이탈리아 회화 수집 열풍이 있었다. 금박을 입힌 시에나·피렌체 제단화가 특히 인기였다. 문제는 진품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수요가 공급을 크게 넘어서면 그 간격을 메우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옛 기법을 그대로 익혀서 “당시 양식으로” 새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생겼다. 이 작품의 작가로 기록된 이칠리오 페데리코 요니도 시에나에서 옛 양식의 그림을 그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그림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다. 특정 원작을 베낀 게 아니라 그 시대의 문법으로 새로운 화면을 구성한 것이다. 나무 패널을 준비하고, 석고 바탕을 올리고, 금박을 붙이고, 달걀 템페라로 칠하는 과정 전체를 옛 방식대로 재현한다. 기술적으로는 대단한 일이다.

미술관은 왜 이걸 버리지 않을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여기다. 진짜가 아니라는 게 밝혀진 뒤에도 이 그림은 컬렉션에 남아 있고, 정보란에 제작 시기가 그대로 공개되어 있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감정의 역사 자체가 자료다. 어떤 작품이 왜 진품으로 여겨졌고 어떻게 아니라고 밝혀졌는지는 미술사 연구의 중요한 부분이다. 물증을 없애면 그 과정을 검증할 수 없다.

19세기 취향을 보여주는 사료다. 이 그림은 15세기가 아니라 19세기 사람들이 15세기를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수집가들이 무엇을 “중세답다”고 느꼈는지가 화면에 담겨 있다.

기술적 성취가 남는다. 옛 재료와 공정을 되살린 솜씨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진품과 나란히 놓고 보기

「성모 승천」은 베르나르도 다디가 1337~38년에 그린 진짜 14세기 작품이다. 사노 디 피에트로의 「성모자」는 1450년경이다.

이 둘과 앞의 작품을 나란히 퍼즐로 맞춰 보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조각 단위로 보면 차이가 조금씩 드러난다.

오래된 패널화는 나무가 수축하면서 생긴 균열이 화면 전체에 그물처럼 퍼져 있다. 금박도 균일하지 않고, 닳은 자리와 남은 자리가 불규칙하다. 반면 나중에 만든 작품은 이런 흔적이 상대적으로 규칙적이거나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있다. 물론 노련한 제작자는 이것까지 재현하기 때문에 눈으로만 판정할 수는 없고, 실제 감정은 재료 분석과 문헌 조사로 이루어진다.

다만 퍼즐로 확대해서 조각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경험은 평소 그림을 볼 때는 절대 하지 않는 방식의 관찰이다. 금박 제단화 읽는 법에서 이야기한 세부들이 훨씬 또렷하게 들어온다.

퍼즐로서의 성격

세 작품 모두 금박 바탕이라 공략법은 비슷하다. 금색 면이 넓게 이어지는 구간에서 한 번 막히고, 인물의 옷 주름과 얼굴 부분에서 속도가 붙는다.

성모자상이 왜 이렇게 많은지를 다룬 글에서 이야기했듯 이 형식은 구도가 정해져 있다. 성모가 가운데, 아기가 품에, 성인들이 양옆. 익숙해지면 조각 하나만 봐도 화면 어디쯤인지 짐작이 간다. 여러 점을 연달아 맞춰 보면 그 감각이 빨리 붙는다.

무엇이 작품을 작품으로 만드는가

이 그림 앞에서 떠오르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400년 뒤에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림 자체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왜 다르게 보일까.

물감도 금박도 그대로다. 달라진 건 우리가 그 화면에 붙이는 이야기뿐이다. 미술관이 이런 작품을 굳이 남겨 두는 이유도 아마 그 질문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 소개한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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