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이트 작품 절반에는 작가 이름이 없다 — '작가 미상'이 뜻하는 것
작성
퍼즐을 고르다 보면 작가란에 “작가 미상”이라고만 적힌 작품을 자주 만나게 된다. 몇 개쯤 되나 세어봤더니 296점 중 151점, 절반이 넘었다.
처음에는 자료가 부실한 탓인가 싶었다. 그런데 하나씩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름이 사라진 게 아니라, 애초에 남길 이유가 없었던 작품이 훨씬 많았다.
서명은 원래 특별한 관습이다
작가가 자기 작품에 이름을 적는 일은 미술사 전체로 보면 오히려 예외에 가깝다. 유럽에서도 화가가 서명을 일상적으로 하게 된 건 르네상스 이후다. 그전에는 그림이 “누가 그렸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가”로 이야기되었다.
「수난 장면이 있는 두 폭 제단화」 같은 15세기 상아 조각을 보자. 이건 감상용 미술품이 아니라 기도할 때 손에 들고 펼치던 물건이다.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쓰는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장면이 정확한가, 손에 잘 들어오는가였다.
공방이 만들었지 개인이 만들지 않았다
중세와 고대의 제작 방식 자체가 이름과 잘 맞지 않는다. 대부분의 작업은 공방 단위로 이루어졌다. 밑그림을 그리는 사람, 조각하는 사람, 채색하는 사람, 금박을 입히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완성품에 이름 하나를 붙이는 게 오히려 사실과 어긋난다.
중세의 작은 성물들을 다룬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물건들은 “작품”이라기보다 정교한 생활용품에 가까웠다. 지금 우리가 잘 만든 가구에 장인의 이름을 굳이 묻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종교화는 이름을 지우는 쪽이 미덕이었다
「수월관음도」 같은 고려 불화가 대표적이다. 이런 그림은 신앙의 대상이지 예술가의 자기표현이 아니었다. 오히려 제작자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태도의 문제로 여겨졌다. 고려 불화의 금선이 그토록 정교한데도 그린 사람의 이름이 남지 않은 건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럴 이유가 없어서다.
이집트는 더하다. 「경찰 총관 멘투호테프」처럼 4천 년 전 조각상에는 조각된 인물의 이름은 정성껏 새겨져 있지만 만든 사람의 이름은 없다. 기록해야 할 이름의 우선순위가 지금과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작가 미상”이 퍼즐에서 갖는 뜻
실용적인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면, 작가 미상 작품은 퍼즐로서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이름난 화가의 그림은 대체로 회화다. 붓질 방향, 색의 번짐, 인물의 표정처럼 조각을 구분할 단서가 많다. 반면 작가 미상 작품은 조각상, 직물, 금속 공예처럼 입체물을 찍은 사진인 경우가 많다. 이런 이미지는 색조가 단조롭고 표면 질감이 비슷해서 체감 난이도가 올라간다. 이집트 석상 퍼즐이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니 작가란이 비어 있는 작품을 골랐다면 조각 수를 한 단계 낮춰 잡는 편이 낫다. 같은 100조각이라도 들라크루아의 유화와 석회암 조각상은 전혀 다른 게임이다.
이름이 없다고 사연이 없는 건 아니다
작가 미상이라는 표기는 정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종류의 정보가 그 시대에는 기록 대상이 아니었다는 뜻에 가깝다. 대신 남은 것이 많다. 어느 무덤에서 나왔는지, 무엇에 쓰였는지, 어떤 안료를 썼는지는 알 수 있다.
퍼즐을 맞추는 동안 그 물건이 원래 어디에 놓여 있었을지 상상해 보면, 비어 있는 작가란이 조금 다르게 읽힌다. 만든 사람의 이름을 몰라도 그 손길은 조각 하나하나에 그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