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를 퍼즐로 맞추면 왜 그림이 다르게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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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사람들이 그림 한 점 앞에 머무는 시간은 평균 십몇 초라고들 한다. 그 정도로는 아무리 유명한 그림이라도 붓질이나 색이 미묘하게 바뀌는 자리까지 보이지 않는다. 퍼즐은 사정이 다르다. 조각 하나를 집으면 “이건 어디로 가지?”에 답해야 하는데, 그 답은 그림을 제대로 읽어야 나온다.
초록 바다 조각을 하나씩 따지다 보면
「폭풍 속에서 잠든 그리스도」는 들라크루아가 1850년대에 여섯 점 넘게 되풀이해 그린 갈릴리 호수 장면 중 하나다. 그냥 보면 “폭풍 속 배 그림”으로 넘어갈 그림이다. 그런데 퍼즐에서는 화면 절반 넘게가 초록 바다라서 조각마다 따져 봐야 한다. 거품 있는 밝은 조각인지, 없는 어두운 조각인지. 붓질은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 들라크루아는 여기서 세부 대신 폭풍의 기세를 그렸고, 바다 조각 하나에 담긴 것도 그 기세, 붓이 움직인 흔적이다.
배 위에서 제자들은 노를 놓치고 팔을 휘젓는다. 뱃머리의 그리스도만 붉은 옷을 입고 팔베개를 한 채 잠들어 있다. 붉은 옷 조각은 눈에 잘 띄어 가장 먼저 찾게 된다. 찾아 놓고 나면, 소동 한가운데서 이 사람 하나만 움직이지 않는 구도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먹으로 그린 대나무 옆에 놓으면
유럽 회화만 있는 건 아니다. 고려와 조선의 그림도 함께 맞출 수 있는데, 어떤 그림들이 있는지는 한국 회화 퍼즐 가이드에 모여 있다.
「풍죽도」(Bamboo in the Wind)는 이정(1541~1626)이 먹으로 그린 대나무다. 먹의 농담만으로 입체감을 낸 그림과 유화 물감을 겹겹이 쌓아 빛과 그림자를 만든 그림을 연달아 맞춰 보면, 그림을 그린다는 일이 문화마다 얼마나 다르게 풀린 문제였는지 손끝으로 알게 된다.
그러면서도 풀이법은 겹친다. 들라크루아의 바다도 이정의 대나무도 붓질 방향을 따라 조각을 잇게 된다. 가리키는 건 다르다. 파도에서는 물이 밀려오는 방향이고, 대나무에서는 앞쪽의 진한 잎과 뒤쪽의 옅은 잎을 한쪽으로 쓸어 간 바람의 방향이다. 비단 바탕만 있는 조각이 많아서 조각 수를 너무 올리면 오히려 막힌다. 색 대신 먹의 짙고 옅음으로 조각을 가려야 한다는 게 처음엔 낯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이 거기에 맞춰진다.
불화(佛畵)는 또 다르다.
「수월관음도」는 14세기 전반의 고려 불화다. 바탕이 어두운 비단이라 전체를 보면 인물이 어둠에 잠겨 있고, 붉은 치마와 금빛 장신구만 겨우 떠오른다. 속이 비치는 얇은 천 위의 흰 선과 금 장식은 조각 단위로 가까이 봐야 알아챌 수 있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보살의 발치에서 올려다보는 작은 인물이 있다. 『화엄경』에서 구도의 길을 떠난 선재동자인데, 어둠 속에서는 조각 몇 개 분량이라 그림 전체를 볼 때는 놓치기 쉽다. 퍼즐에서는 이 조각들이 따로 모이니까 어느 순간 “이 작은 사람은 누구지?” 하고 묻게 된다. 이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는지는 고려 불화의 금선에서 따로 다뤘다.
24조각과 300조각은 보는 게 다르다
같은 그림이라도 24조각으로 풀 때와 300조각으로 풀 때 눈이 가는 곳이 다르다. 조각이 큼직하면 인물이 어디 있는지, 색 덩어리가 어떻게 놓였는지, 곧 구도를 읽는다. 조각이 잘아지면 한 조각에 붓질 몇 번이 들어올 뿐이라 붓의 속도와 방향을 보게 된다. 폭풍 그림을 쉬움으로 한 번, 전문가로 한 번 풀어 보면 같은 바다가 서로 다른 그림 같다. 어떤 그림을 몇 조각으로 할지는 난이도 고르는 법에서 따로 다뤘다.
조각이 알려 주지 않는 것
퍼즐은 오래 보게 만들 뿐,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폭풍 속에 잠든 인물이 마가복음의 어느 장면인지, 바람 맞는 대나무가 왜 선비의 절개와 이어지는지는 조각을 아무리 맞춰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퍼즐 페이지마다 판 아래에 해설을 달아 두었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 그 배경, 풀 때의 요령 순이다.
어느 쪽을 먼저 해도 괜찮다. 해설을 읽고 풀면 조각이 이미 아는 이야기의 일부로 보이고, 풀고 나서 읽으면 손이 먼저 알아챈 것에 이름이 붙는다. 미리보기는 기본으로 꺼져 있다. 막혔을 때만 켜서 점선으로 대략의 위치를 확인하면 그림을 훨씬 오래 붙들고 있게 된다.
흔들리는 배에서 붉은 옷을 찾느라 들인 몇 분, 어둠 속 선재동자를 알아보기까지 걸린 몇 분은 미술관에서 그 그림 앞에 서 있던 십몇 초보다 길다. 그렇게 조각조각 붙들어 본 그림을 언젠가 실물로 만나면, 그 앞에서는 걸음이 조금 느려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