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5년에서 1823년까지, 이름이 남은 자수 샘플러 다섯 점과 건물 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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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피어스가 바늘로 이것을 만들었다.” 아마천 위 알파벳 줄 아래에 이렇게 수놓은 소녀는 열세 살 안팎이었다. 앞서 자수 견본 이야기에서 샘플러 세 점을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때 다루지 않은 여섯 점을 시간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1735년부터 1823년까지 거의 90년에 걸친다. 다섯 점에는 만든 이의 이름이 남았고, 나이는 적혀 있지 않아도 소장 기록의 출생연도로 몇 살쯤이었는지 거꾸로 셈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마지막 한 점만 이름 대신 건물을 수놓았다.
| 작품 | 만든 이 | 연도 |
|---|---|---|
| 샘플러 | 메리 피어스 | 1735 |
| 퀸스 하우스 샘플러 | 작가 미상 | 1777 |
| 샘플러 | 레베카 갤리언 | 1792 |
| 샘플러 | 제인 로저스 | 1800~1830 |
| 샘플러 | 메리 앤 리드 | 1813 |
| 샘플러 | 해리엇 케이츠 | 1823 |
1735년, 열세 살 메리 피어스
가장 오래된 건 메리 피어스의 샘플러다. 아마천에 붉은색과 갈색 실로 알파벳 여러 줄을 수놓고, 그 밑에 자기가 바늘로 만들었다는 글귀를 넣었다. 소장 기록에 출생연도가 1722년 무렵으로 남아 있으니 열세 살 안팎에 완성했다. 18세기 영국 소녀들은 이렇게 자기 이름을 수놓으며 처음으로 작품이라 할 만한 것을 남겼다. 1727년에 열네 살 메리 그리피츠가 만든 띠 샘플러와 견줘 보면, 몇 해 사이에 그림이 차지하는 몫이 얼마나 늘었는지 보인다.
글자 줄과 그림 구역을 가르는 붉은 띠가 퍼즐에서는 길잡이 노릇을 한다. 띠를 한 줄로 이어 놓으면 나무와 새 조각은 그 아래에만 들어간다.
1777년, 이름 대신 건물
퀸스 하우스 샘플러는 이 목록에서 혼자 결이 다르다. 알파벳도 시도 없이 실제 건물을 그림처럼 수놓았다. 갈색 바탕 천 위에 흰 창문이 줄줄이 난 건물이 정면으로 서 있고, 그 위에 “The Queens House 1777”이라는 글자가 있다. 아래로는 정원과 마차, 산책하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놓였다.
퀸스 하우스는 건축가 이니고 존스가 17세기 초에 설계한 그리니치의 왕실 저택으로, 영국 최초의 고전주의 건물로 꼽힌다. 만든 사람의 이름은 남지 않았다. 그래도 창문 수와 지붕 장식까지 맞춰 놓은 걸 보면 실물이나 판화를 앞에 두고 만들었을 게 틀림없다.
건물의 흰 창문 격자, 아래쪽 정원의 작은 사람들과 마차, 양옆의 덩굴 테두리로 화면이 세 구역으로 나뉜다. 창문은 너무 규칙적이라 헷갈린다. 지붕과 1층 문부터 놓고, 창문 줄은 한 층씩 세어 올라간다.
1792년, 찬송가 네 절과 양 떼
레베카 갤리언의 샘플러에는 아브라함의 축복을 노래하는 찬송가 네 절과 양 떼가 노니는 풍경이 함께 들어 있다. 붉은 꽃 테두리 안에 판 두 개가 나란히 있고 판마다 찬송가가 두 절씩, 그 아래로 나무와 양 떼, 개, 앉아 있는 사람이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18세기 영국에서 널리 부르던 찬송가다. 샘플러에 가사를 넣으면 바느질과 신앙 교육을 한꺼번에 할 수 있었다. 레베카 갤리언은 자기 나이까지 수놓아 두어서 어린 소녀의 솜씨라는 걸 알 수 있다.
조각은 위쪽 글자 판, 아래쪽 풍경, 바깥 꽃 테두리 세 무더기로 갈라 두고 시작한다.
1800~1830년, 색이 많아진 자수
제인 로저스의 샘플러는 정확한 해 대신 30년의 폭으로만 기록돼 있다. 붉은 꽃 덩굴 테두리가 두 겹으로 화면을 감싸고, 안쪽에 시 몇 줄과 꽃바구니, 새 두 마리, 나무, 작은 집이 들어 있다. 19세기 초 영국 샘플러에서는 이렇게 테두리를 두 겹으로 두르고 안을 그림으로 채우는 형식이 자리를 잡았다. 붉은색, 초록, 갈색, 노란색이 고루 섞여 앞의 두 점보다 한결 화사하다.
색이 많고 빈 천 조각이 적어서 300조각까지 올려도 즐길 만하다.
1813년, 시간을 아끼라는 시
메리 앤 리드의 샘플러는 “귀중한 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보라”로 시작하는 교훈시를 담았다. 시간을 아끼라는 이런 시는 샘플러에 자주 들어가던 글이었다. 위에 나무 세 그루와 새, 가운데 시 여덟 줄, 아래에 꽃 덩굴로 감싼 이름과 연도가 가로로 나뉘어 있다. 이름을 꽃 덩굴로 두르는 마무리는 1810년대 영국 샘플러에서 유행했다.
1823년, 여섯 살 해리엇 케이츠
마지막은 해리엇 케이츠의 샘플러다. 붉은 꽃 테두리 안 위쪽에 “FRIENDSHIP”이라는 큰 글자와 시 몇 줄을, 가운데에 꽃바구니와 새와 나무를, 아래에 붉은 벽돌집과 울타리를 수놓았다. 소장 기록의 출생연도(1817년 무렵)로 따져 보면 여섯 살 무렵에 만들었다. 이런 집은 실제 자기 집보다는 도안집에 있는 정해진 그림일 때가 많았는데, 소녀들은 창문 수나 문 색을 바꿔 제 것으로 만들었다. 우정을 노래하는 시는 학교 친구에게 주려고 수놓은 샘플러에서 자주 보인다.
메리 앤 리드와 해리엇 케이츠의 샘플러는 둘 다 위(나무), 가운데(시), 아래(이름이나 집)가 가로로 갈려 있다. 위아래 띠를 먼저 채우고, 시가 적힌 가운데는 글자 줄을 따라 한 줄씩 잇는다. 이 둘을 비롯해 여섯 점 대부분이 100조각 안팎에서 무리 없이 풀린다.
알파벳에서 그림으로, 그리고 예외 한 점
여섯 점을 순서대로 놓으면, 영국 샘플러가 알파벳 연습에서 차츰 그림에 가까운 형식으로 옮겨 간 흐름이 보인다. 열세 살 메리 피어스의 수수한 알파벳 줄에서 시작해, 여섯 살 해리엇 케이츠가 제목과 시와 집 그림까지 갖춰 넣은 천에 이른다. 그런데 그 흐름 한복판에 놓인 1777년의 퀸스 하우스만 이름이 없다. 누군가는 이름을 남겼고, 누군가는 건물을 남겼다.
작가 미상인 작품이 훨씬 많은 미술관 소장품 사이에서, 바느질을 배우던 소녀들의 샘플러는 이름이 또렷이 남은 드문 경우다. 만든 사람을 전혀 알 수 없는 헝가리 목동의 겨울옷 같은 옷과 나란히 놓아 보면, 천 귀퉁이에 제 이름을 한 땀씩 새겨 넣는 일이 그 시절 소녀들에게 얼마나 큰일이었을지 짐작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