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장식미술 부서에 들어간 헝가리 목동의 가죽 겨울옷 여섯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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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가죽에 붉은 천 꽃을 오려 붙인 조끼, 목둘레에 검은 곱슬 양털을 단 케이프, 운모 조각이 줄지어 반짝이는 조끼. 재료 목록에 가죽·운모·양털·금속이 나란히 적혀 있으니 “유럽 장식미술” 부서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 여섯 벌은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산악 지역 목동들이 입던 겨울옷이다. 모두 브루클린 미술관이 1920년대 초 원정에서 모은 의상 컬렉션 출신이고, 지금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
| 작품 | 재료 | 시대 |
|---|---|---|
| 재킷(조끼) | 가죽, 모, 유리, 금속 | 1887 |
| 망토 | 모, 가죽, 금속 | 19세기 말 |
| 케이프 | 가죽, 모 | 1840~70 |
| 재킷(조끼) | 가죽, 운모, 금속 | 1840~70 |
| 어린이 조끼 두 벌(한 사진) | 가죽, 모 | 19세기 말 |
오려 붙인 가죽 조끼
첫 번째 재킷은 이름만 재킷이지 소매 없는 조끼에 가깝다. 검은 가죽 바탕에 붉은 천을 꽃 모양으로 오려 붙이고, 그 위에 금실과 작은 유리 조각을 박았다. 가죽 위에 색 천을 오려 붙이는 장식은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가죽 장인들이 쓰던 기법이다. 자수보다 빠르고, 멀리서도 눈에 잘 띈다. 1887년이라는 연도가 정확히 남은 걸 보면 옷 안에 만든 해가 적혀 있거나 소장 기록이 남았을 것이다.
검은 바탕과 붉은 무늬가 또렷해서 퍼즐로는 풀기 좋은 편이다. 앞섶의 붉은 띠와 목둘레, 주머니의 술 조각을 먼저 맞추고 붉은 꽃은 좌우 대칭으로 놓아 간다.
청혼 선물로도 쓰인 외투
망토는 미색 양모 바탕의 앞섶과 소매, 밑단을 따라 붉은색과 보라색 꽃 자수 띠를 둘렀다. 목에는 금속 버클이 있고 앞에는 검은 가죽 술이 늘어져 있다. 헝가리 대평원의 목동이 입던 쉬르(szűr)는 두꺼운 양모 천에 자수를 놓은 외투인데, 소매에 팔을 끼우지 않고 망토처럼 걸쳐 입었다. 19세기에는 청혼 선물로도 오갔다. 이 옷의 생김새와 자수, 가죽 술 장식은 그 전통을 꼭 닮았다. 맞출 때는 목의 버클과 검은 술 조각을 가운데 두고, 자수 띠로 앞섶과 소매를 두른 다음 미색 조각을 채운다.
케이프는 1840~70년에 만들어져 조금 더 오래됐다. 미색 가죽에 초록 실로 잎 무늬를 촘촘히 수놓고 아래쪽에는 붉은 꽃 자수를 둘렀으며, 목둘레에 검은 곱슬 양털을 달았다. 양가죽을 뒤집어 털을 안쪽에 두고 겉면에 수를 놓는 방식은 헝가리·슬로바키아·루마니아에서 겨울 축제나 혼례 때 입던 옷의 전형이다. 자수를 어디에 어떻게 놓았는지가 지역과 공방의 표식이었고, 목의 검은 양털이 가장 비싼 부분이었다. 퍼즐에서는 그 검은 양털과 밑단의 붉은 띠로 위아래를 잡고, 초록 자수는 무늬 방향을 따라 잇는다.
운모가 반짝이는 조끼
두 번째 재킷도 이름과 달리 소매 없는 긴 조끼다. 미색 가죽에 붉은 천을 세로로 덧대고, 그 위에 둥근 금속 단추와 작은 운모 조각을 줄지어 박았다. 운모는 얇게 벗겨지는 투명한 광물로, 값비싼 거울이나 금속 대신 반짝임을 내려고 시골 옷에 썼다. 천을 덧대고 장식을 박는 방식은 자수보다 튼튼해서 오래 입을 수 있었다. 붉은 세로 띠와 금속 단추 줄이 세로 축을 이루니 퍼즐도 그 줄부터 세우면 된다.
한 사진에 찍힌 아이 옷 두 벌
마지막 두 점은 한 장의 사진에 나란히 찍힌 어린이 조끼다. 소장 번호는 둘로 나뉘어 있지만 사진이 같아서 이 사이트에서는 퍼즐 하나로 함께 맞춘다.
어린이 조끼 두 벌은 둘 다 흰 곱슬 양털을 가장자리에 두른 양가죽 조끼인데 생김새는 꽤 다르다. 왼쪽은 적갈색 가죽 몸판을 주황빛 끈 고리 네 줄과 둥근 매듭 단추로 여몄고, 가슴 위쪽에 노란색·자홍색 가죽을 물방울과 꽃 모양으로 오려 붙였다. 오른쪽은 앞이 열려 양털 앞섶이 젖혀져 있다. 노란 가죽 판에 자홍색 물방울 무늬를 붙였고, 붉은 끈을 꼬아 만든 매듭이 솔방울 모양의 큰 술로 끝난다. 기록상 등길이는 38.1cm와 48.3cm여서 나이가 다른 두 아이의 옷이었을 수도 있다. 사진 속 어느 쪽이 어느 번호인지는 기록에 나와 있지 않다.
흰 양털 테두리로 두 조끼의 윤곽부터 따로 두르고, 왼쪽은 주황 끈 고리 줄, 오른쪽은 솔방울 술을 기준 삼아 안을 채운다. 여섯 벌 모두 48~100조각이면 알맞다.
부서 이름과 옷의 정체
Met의 “유럽 장식미술” 부서는 회화나 조각 말고도 유럽 전역의 민속 공예까지 아우른다. 헝가리 목동의 가죽옷이 이 부서에 있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그래도 재료 목록만 보고 떠올리는 모습과 실제 옷의 정체 사이에는 이만큼 거리가 있다. 물감 대신 가죽과 운모와 양털이라는 입체 재료로 만들었다는 것도 여섯 벌의 공통점이다. 머리에 쓰는 것들에서 다룬 유럽 민속 복식과 나란히 보면 그 시골 옷차림이 한결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만든 사람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이 사이트 작품의 거의 절반이 작가 미상인 까닭이 여기서도 되풀이된다. 이름을 수놓아 남긴 자수 샘플러의 소녀들과 견주면 차이가 더 잘 보인다. 이런 옷은 처음부터 한 사람의 서명보다 마을과 공방의 전통을 남기는 쪽이었다.
산업화 이전 유럽의 산골에서 누군가는 겨울 축제에 입을 조끼 하나에 꽃을 오려 붙이고 운모를 박았다. 그 정성이 100년 넘게 지나 미술관 컬렉션에 남았고, 이제는 조각조각 화면 위에서 다시 맞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