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두 개와 이름 없는 사슴 샘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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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끝에 알파벳 머리글자가 찍힌 백랍 숟가락 두 개. 그리고 만든 이의 이름이 남지 않은 자수 샘플러 한 점. 옷과 자수를 다룬 글은 여럿 썼지만, 이 두 점은 어느 갈래에도 깔끔하게 들어가지 않았다. 재료도 시대도 다른데,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눈길이 간다는 점은 닮았다.
| 작품 | 재료 | 연대 |
|---|---|---|
| 숟가락 | 백랍 | 1700~1800 |
| 샘플러 | 비단, 아마 | 1761년 무렵 |
은을 살 수 없던 집의 숟가락
숟가락은 흑백 사진이다. 둥근 그릇 부분에 편평한 손잡이가 달린 숟가락 두 개가 놓여 있고, 손잡이 끝과 그릇 안쪽에 알파벳 머리글자가 찍혀 있다. 표면에는 오래 쓴 긁힌 자국이 있다.
백랍은 주석에 납이나 구리를 섞은 합금이다. 은보다 훨씬 싸고 녹는점이 낮아서 틀에 부어 쉽게 만들 수 있었다. 18세기 유럽과 미국의 보통 가정은 접시와 숟가락, 잔을 백랍으로 썼고, 이름 머리글자를 찍어 누구 것인지 표시했다. 오래 쓰면 무르고 찌그러지는 재료라 이렇게 온전히 남은 경우는 드물다.
여기 있는 다른 작품 대부분은 자수나 회화처럼 보여 주려고 만든 물건이다. 이 숟가락은 그저 쓰려고 만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18세기 보통 사람의 식탁을 가장 곧장 보여 준다.
흑백인 데다 배경이 밋밋해서 24조각으로 잘라도 형태에만 기대야 한다. 두 숟가락의 둥근 그릇과 손잡이의 직선, 아래쪽 눈금자와 라벨이 든 조각은 금방 자리를 찾는다. 빈 배경은 그 둘레에 남은 것끼리 맞춘다.
이름이 잘려 나간 자수
샘플러는 누런 아마천 위에 붉은 꽃 덩굴 띠가 가로로 놓여 화면을 세 칸으로 나눈다. 칸마다 시 몇 줄과 나무, 꽃바구니, 작은 인물을 수놓았고, 맨 아래 칸에는 사슴 두 마리가 나무 사이에 서 있다. 1735년부터 1823년까지의 샘플러 다섯 점은 만든 이의 이름이 남은 경우였다. 이 샘플러에는 이름도 나이도 없다. 그 부분이 잘려 나갔거나 처음부터 넣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18세기 중반 영국의 샘플러는 알파벳 연습판에서 시와 그림을 담은 장식 작품으로 옮겨 가던 참이었다. 시는 우정과 덕을 노래하는 흔한 교훈시이고, 사슴과 나무는 당시 도안집에 실린 정해진 그림이다. 샘플러라는 물건 자체의 내력은 자수 견본 이야기에서 다뤘다. 이름이 빠졌다고 덜 정성스러운 건 아니다. 다만 이 한 점만은 누가 몇 살에 만들었는지 되짚을 길이 없다.
100조각으로 맞출 때는 붉은 덩굴 띠 세 줄부터 이어 칸을 만든다. 사슴과 나무처럼 형태가 있는 조각을 칸마다 넣고 나면 글자 조각이 남는데, 이건 줄 간격을 보고 위아래를 정한다.
화려하지 않아서 남는 것
두 점 모두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소박하다. 금실도 보석도 유명한 화가의 이름도 없다. 그런데 당시 보통 사람들이 실제로 손에 쥐고 살던 물건에 가장 가까운 건 이런 것들이다. 일상의 물건이라는 점에서는 중세의 생활용품과도 통한다.
지난 몇 편 동안 아직 다루지 않은 작품들을 찾아 이어 왔는데, 이 두 점으로 일단 한 바퀴가 끝난다. 작품의 거의 절반이 작가 미상이라는 걸 떠올리면, 이름 없는 샘플러와 머리글자만 남은 숟가락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어울린다. 손잡이 끝에 찍힌 머리글자 몇 개가, 이 숟가락으로 밥을 먹던 사람에 대해 남은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