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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 받침부터 벽 타일까지, 성인이 나오지 않는 중세 물건 다섯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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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난로 안에서 장작을 받치던 쇠붙이에 소용돌이와 짐승 머리가 달려 있다. 「중세 미술」 부문은 대부분 성인과 성모, 성물을 그리거나 새긴 것인데, 여기 고른 다섯 점에는 성인도 왕도 없다. 벽난로 곁의 쇠붙이, 벽을 덮던 타일, 건물 벽에 박혀 있던 대리석 원판. 중세 사람들의 부엌과 건물 벽을 꾸미던 실용품들이다.

작품문화권시대재료
앤다이언이탈리아14세기쇠
벽걸이이탈리아14세기쇠
벽 타일 (큰 것)스페인15세기유약 도기
벽 타일 (작은 것)스페인15세기유약 도기
장식용 원판이탈리아(베네치아)12~13세기대리석

벽난로 앞의 쇠붙이 한 쌍

앤다이언이 그림을 퍼즐로 맞춰보기 → 쉬움은 약 5분 벽걸이

「앤다이언」과 「벽걸이」는 둘 다 1908년 로저스 기금으로 들어온 14세기 이탈리아 쇠 세공품이다. 부엌이나 벽난로 앞에서 실제로 쓰던 물건이다.

앤다이언은 벽난로 안에 두 개를 마주 세워 장작을 바닥에서 띄우는 받침이다. 밑으로 공기가 통해야 불이 잘 붙는다. 위쪽 갈고리에는 냄비나 꼬치를 걸었으니 요리 도구 걸이 노릇까지 했다.

벽걸이는 벽에 박아 등잔이나 냄비, 옷을 걸던 물건이다. 둘 다 실용품인데 장식을 아끼지 않았다. 14세기 이탈리아 대장장이들은 앤다이언에도 소용돌이와 짐승 머리를 넣었고, 벽걸이의 네 잎 무늬는 고딕 건축의 창 장식에서 왔다. 뱀 머리는 쇠를 두드려 빚은 솜씨다. 쓰려고 만든 물건이 선이 너무 고와서 결국 미술관까지 왔다.

퍼즐에서 애를 먹이는 쪽은 앤다이언이다. 미술관 이미지가 흑백이라 색으로는 아무것도 가를 수 없고 밝기 차이만 남는다. 구부러진 쇠막대가 흰색이나 회색 배경과 만나는 경계 조각부터 모아서 곡선을 따라 잇는다. 쇠붙이 두 점은 24~48조각이면 충분하다.

스페인 벽을 덮은 이슬람 문양

벽 타일 두 점

「벽 타일」 두 점은 15세기 스페인에서 구운 도기 타일이다. 둘 다 “개럿 채트필드 피어 기증, 1908년”으로 들어왔다.

큰 타일에서 띠가 얽혀 도는 기하 문양은 이슬람 미술에서 왔다. 15세기 스페인의 무데하르(기독교 지배 아래 남은 이슬람 장인) 공방은 이런 문양을 도기 타일로 구워 궁전과 성당 벽을 덮었다. 메트 기록은 두 점의 제작지를 “세비야 또는 톨레도”로 적는다. 타일 한 장에는 무늬의 일부만 들어 있어서, 여러 장을 이어 붙이면 무늬가 끝없이 이어진다.

작은 타일

작은 타일은 같은 때, 같은 지역 것인데 무늬가 더 단순하다. 이런 작은 타일로 큰 타일 사이의 띠나 모서리를 채웠다. 파란 점은 코발트 유약이고, 당시에는 값비싼 색이었다. 큰 무늬와 그 사이를 메운 작은 무늬가 함께 한 벽을 이뤘다.

기독교 스페인의 건축 장식이 이슬람 문양을 그대로 썼다는 게 눈여겨볼 대목이다. 작은 타일의 흰 띠 매듭도 그렇게 흡수된 문양이다. 종교가 다른 두 문화가 벽 위에서는 스스럼없이 섞였다.

타일은 얽힌 띠 무늬가 조각끼리 닮아 까다롭다. 반복 무늬가 어려운 이유에서 다룬 것처럼 네 모서리부터 맞추면 전체 짜임이 잡힌다. 무늬가 단순한 작은 타일은 24~48조각으로, 큰 타일은 48조각으로 한다.

아테네의 돌이 베네치아 벽에

장식용 원판

「장식용 원판」에서는 새 두 마리가 목을 엇갈린 채 마주 서 있다. 목을 엇갈린 두 새는 비잔틴에서 베네치아로 건너온 문양이고(비잔틴의 문양이 지중해를 어떻게 건너다녔는지는 비잔틴 금화에서도 보인다), 12~13세기 베네치아에서는 궁전 벽에 이런 원판을 박아 넣는 게 유행이었다. 두 새는 화합이나 부부를 뜻한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돌의 출처다. 소장처 기록은 이 대리석을 아테네 펜텔리콘 산에서 캐낸 펜텔리콘 대리석이라고 밝힌다. 펜텔리콘 대리석은 고대 그리스 신전을 지은 돌이라, 옛 건물에서 뜯어낸 돌을 다시 썼을 가능성이 있다. 그 추정이 맞다면 그리스 신전을 이루던 돌이 어떤 길로든 베네치아까지 와서, 몇 세기 뒤 궁전 벽에 박혔다.

원판 퍼즐은 두 새가 목을 엇갈린 가운데에서 출발해 바깥으로 넓혀 간다. 큰 타일처럼 48조각이면 넉넉하다.

불 지피고 등잔 걸던 물건에도

다섯 점 모두 성인의 얼굴도 왕의 이름도 새기지 않았다. 불을 지피고, 등잔을 걸고, 벽을 덮던 물건들이다. 그런데도 소용돌이와 기하 문양과 상징이 빼곡하다. 중세의 작은 보물들이 손에 쥐던 물건의 정교함을 보여 준다면, 이 다섯 점은 집과 건물이라는 더 큰 공간을 채운 장식을 보여 준다.

중세 미술이라고 하면 제단화와 성물함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 시절 사람들이 하루 중 가장 오래 마주한 건 아마 부엌의 쇠붙이와 방의 벽이었다. 매일 장작을 얹던 받침 끝에 짐승 머리 하나를 더 두드려 넣은 대장장이를 떠올리면, 성화 속 얼굴들보다 그쪽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글에서 소개한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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