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목록

흩어지지 않고 액자째 남은 비바리니의 다섯 장면 제단화

작성

뾰족한 첨탑 여러 개가 솟은 금박 액자 안에 다섯 장면이 들어 있다. 가운데에는 땅에 앉은 성모자, 그 양옆으로 수태고지와 성탄과 피에타. 흩어진 제단화 패널에서는 큰 제단화가 낱장으로 해체되어 팔리고 짝을 이루던 패널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이야기를 했다. 이 제단화는 정반대다. 다섯 장면이 원래의 액자까지 그대로 한 몸으로 남았다.

한 액자 안의 다섯 장면

겸손의 성모, 수태고지, 성탄, 그리고 피에타이 그림을 퍼즐로 맞춰보기 → 쉬움은 약 5분

「겸손의 성모, 수태고지, 성탄, 그리고 피에타」는 긴 제목이 곧 내용 목록이다. 가운데 큰 칸에는 장미 울타리 앞 땅에 앉은 성모자가 있다. 왼쪽 위아래에는 수태고지의 천사와 성탄이, 오른쪽 위아래에는 수태고지의 마리아와 피에타가 있다.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다섯 순간이 한 점 안에 압축되어 있다. 천사와 마리아로 나뉜 수태고지, 탄생, 성모자, 그리고 죽음 뒤의 피에타. 액자도 원래 것으로 보인다. 그림과 함께, 그림을 담았던 틀까지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 전해진다.

옥좌 대신 땅에 앉은 성모

가운데 장면의 형식에는 이름이 있다. ‘겸손의 성모’는 옥좌 대신 땅에 앉은 마리아를 그리는 형식으로, 14~15세기에 널리 퍼졌다.

옥좌에 앉은 성모자에서 본 네 점은 모두 화려한 옥좌에 앉은 성모였다. 이 제단화의 성모는 땅바닥에 앉았다. 왕좌를 마다하고 낮은 자리를 고른 모습이다. 같은 인물에게 정반대의 자세를 취하게 해서 신앙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 중세 말 회화는 그런 식으로 말했다.

무라노 섬의 화가 가문

그린 사람은 바르톨로메오 비바리니다. 베네치아 무라노 섬의 화가 가문 출신으로, 딱딱한 윤곽선과 화려한 금박 액자가 특징이다. 이 무렵 이탈리아 제단화가 왜 금을 그렇게 썼는지는 금박 패널화 퍼즐 가이드에서 따로 다뤘다.

무라노는 베네치아 석호 안의 작은 섬이다. 유리 공예로 유명하지만 비바리니 가문처럼 그림으로 이름을 남긴 화가들도 있었다. 이 제단화는 작은 성당이나 개인 예배당의 제단 위에 놓였으리라 짐작된다. 큰 성당을 압도하는 대형 제단화보다는 작은 공간에 어울리는 아담하고 개인적인 제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 흩어지지 않았을까

이 제단화가 어떻게 온전히 남았는지, 정확한 경위는 지금 가진 자료로는 알 수 없다. 짐작은 해 볼 수 있다. 큰 제단화일수록 여러 패널로 나뉘어 팔리기 쉬웠다. 반면 처음부터 한 액자 안에 여러 장면을 몰아넣은 이런 형식은 물리적으로 나누기가 더 어려웠을 테고, 첨탑과 칸이 하나의 목조 구조물로 이어져 있으니 낱장으로 뜯어내기보다 통째로 옮기는 편이 자연스러웠을 수 있다.

금색 액자부터, 한 칸씩

요소가 많아서 손꼽히게 복잡한 퍼즐에 든다. 그래도 칸을 나누는 일은 금색 액자가 대신 해 준다. 첨탑의 뾰족한 꼭대기와 기둥의 세로선이 든 조각부터 골라 바깥 테두리와 칸막이를 세운다. 다섯 칸 가운데 가장 큰 성모자 칸을 먼저 완성하면 나머지 네 칸의 위치가 가늠되고, 네 모서리 장면은 인물의 옷 색과 자세가 서로 달라 헷갈릴 일이 적다. 300조각으로 잘라도 칸 하나하나는 한자리에서 끝낼 만한 크기라, 한 칸씩 닫아 가다 보면 지치지 않고 마지막 조각까지 간다.

온전히 남는다는 것

큰 제단화가 조각나 흩어진 이야기를 듣고 나면, 다섯 장면과 액자까지 고스란히 남은 이 작품이 더 귀하게 보인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거장들에 나오는 다른 금박 그림들 옆에 놓으면 처음 모습 그대로 남는다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지 알게 된다.

원래의 액자 안에서 성모는 지금도 장미 울타리 앞 땅바닥에 앉아 있다. 옥좌 대신 고른 그 낮은 자리도 처음 그대로다.

이 글에서 소개한 퍼즐

이어서 읽으면 좋은 글

낱장으로 팔려 흩어진 제단화,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짝 패널 세 쌍 →초기 르네상스 제단화는 왜 금박 바탕일까, 레만 컬렉션 패널화 읽기 →피렌체에서 안코나까지, 옥좌의 성모자 네 점으로 보는 이탈리아 화풍 →한 사람의 수집품에 보티첼리와 벨리니가 함께 있는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