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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 안코나까지, 옥좌의 성모자 네 점으로 보는 이탈리아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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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바탕, 높은 옥좌, 그 위에 아기를 안은 성모. 중세와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이만큼 자주 그려진 장면도 드물어서, 성모자상이나 금박 패널화 이야기에도 거듭 나온다. 그런데 화가가 어느 도시 사람이냐에 따라 같은 장면이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옥좌 성모자 네 점은 피렌체, 베네치아, 그리고 이탈리아 동해안 마르케 지방의 화가들이 그렸다. 가장 이른 것이 1330년대, 가장 늦은 것이 1487년이니 150년 가까이 벌어져 있다.

작품화가지역연대
작은 세 폭 제단화 중앙베르나르도 다디피렌체1335~39년 무렵
세 폭 휴대용 제단화마테오 디 파치노피렌체1370~74년 무렵
기부자와 함께로렌초 베네치아노베네치아1360~65년 무렵
크리벨리풍 제단 패널니콜라 디 마에스트로 안토니오마르케(안코나)1487년 무렵 추정

손바닥만 한 여행용 제단, 다디

작은 세 폭 제단화 중앙이 그림을 퍼즐로 맞춰보기 → 쉬움은 약 5분

「작은 세 폭 제단화 중앙」은 폭이 10센티미터밖에 안 된다. 여닫을 수 있는 세 폭 제단화의 가운데 판으로, 길을 떠날 때 들고 다니거나 방 안에서 기도할 때 펼쳐 두던 물건이다.

베르나르도 다디는 조토의 제자 세대에 속한다. 피렌체에서 큰 공방을 꾸리며 이런 개인 기도용 그림을 많이 만들었다. 뾰족한 삼각 지붕 아래 옥좌에 앉은 성모, 이 형식의 기본꼴이 여기 있다. 워낙 작은 그림이라 퍼즐도 24조각이면 충분하다. 금박 삼각형 꼭대기 조각이 먼저 눈에 들어오니 거기서부터 옥좌 쪽으로 내려온다.

열 장면을 접어 넣은 마테오 디 파치노

세 폭 휴대용 제단화

30여 년이 흐른 뒤 같은 피렌체에서 마테오 디 파치노는 훨씬 욕심을 낸 세 폭 제단화를 만들었다. 「세 폭 휴대용 제단화」의 가운데 판에는 성모자와 네 성인, 그 아래 성탄 장면이 들어갔다. 양쪽 날개에는 수태고지부터 십자가, 은수자 성인들의 이야기까지 칸칸이 채웠다.

펼친 폭이 45센티미터인데 장면은 열 개가 넘는다. 기도할 주제를 한 점에 모조리 갖추고 싶었던 듯하다. 오른쪽 날개의 은수자 오누프리우스와 파프누티우스 이야기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주제다. 작은 나무판 안에 신앙의 거의 모든 장면이 접혀 들어가 있다. 퍼즐로도 넷 중 가장 손이 많이 간다. 가운데 성모자를 먼저 맞추고 양쪽 날개는 위 칸에서 아래 칸으로 차례차례 채우는데, 요소가 워낙 많아 300조각에 도전해 볼 만하다.

베네치아의 부드러운 고딕, 로렌초 베네치아노

기부자와 함께

「기부자와 함께」 앞에 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로렌초 베네치아노는 14세기 중반 베네치아에서 비잔틴풍을 벗고 고딕의 부드러움을 들여온 화가다.

눈여겨볼 데가 둘 있다. 아기가 손에 쥔 새는 수난을 미리 알리는 상징으로 읽힌다. 그리고 옥좌 양옆 아래, 무릎 꿇은 조그만 남녀가 있다. 그림을 주문한 기부자 부부다. 주문자를 성모보다 훨씬 작게 그리는 게 당시의 관례였고, 성스러운 인물과 현실의 사람을 크기로 나누는 건 이 시대 그림의 약속이었다. 원래의 고딕 조각 액자까지 남아 있어서 베네치아 제단화가 처음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온전히 볼 수 있다. 퍼즐에서는 기둥과 아치가 겹겹이 새겨진 이 액자를 먼저 두르면 안쪽 그림의 경계가 잡힌다. 100조각으로 맞추다 보면 발치의 작은 기부자 부부 조각을 엉뚱한 데 두기 쉽다.

아드리아해의 화려함, 니콜라 디 마에스트로 안토니오

크리벨리풍 제단 패널

가장 늦게 그려진 「크리벨리풍 제단 패널」은 세로 1.4미터로 넷 중 가장 크다. 니콜라 디 마에스트로 안토니오는 동해안 안코나의 화가로, 같은 지역에서 활동한 카를로 크리벨리에게 크게 기울어 있었다.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화환, 금색 무늬가 화려한 옷, 단단한 윤곽선이 다 크리벨리의 흔적이다. 아래로 펼쳐진 흑백 체크무늬 대리석 바닥도 눈에 띈다. 원래는 여러 성인 패널과 함께 큰 제단화의 가운데를 차지했으리라 추정된다.

퍼즐로는 이 체크무늬 바닥이 고맙다. 흑백 칸이 몇 번째 줄 몇 번째 칸인지 세어 보면 조각 자리가 정확히 나오니, 100조각으로 해도 바닥부터 깔고 화환과 옥좌로 올라간다.

같은 약속, 다른 얼굴

연대순으로 다시 늘어놓으면 이렇다. 1330년대 피렌체의 소박한 기본형(다디), 1360년대 베네치아의 부드러운 고딕(로렌초 베네치아노), 1370년대 같은 피렌체의 빽빽하고 풍성한 구성(마테오 디 파치노), 그리고 1487년 아드리아해 연안의 화려한 장식(니콜라 디 마에스트로 안토니오). 하나의 도상이 도시와 세월을 건너며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는다.

큰 제단화가 조각조각 나뉘어 팔리던 시절을 지나 이 네 점도 저마다의 길로 한 컬렉션에 모였다. 폭 10센티미터의 다디와 세로 1.4미터의 니콜라가 이제 나란히 있다. 같은 성모가 한쪽에서는 길 떠나는 사람의 짐 속에, 다른 쪽에서는 제단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이 글에서 소개한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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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자상은 왜 이렇게 많을까, 같은 장면을 수백 년 그린 이유 →초기 르네상스 제단화는 왜 금박 바탕일까, 레만 컬렉션 패널화 읽기 →낱장으로 팔려 흩어진 제단화,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짝 패널 세 쌍 →성인은 못 되었지만 시에나가 기억한 두 복자, 조반니 디 파올로의 초상 →한 사람의 수집품에 보티첼리와 벨리니가 함께 있는 이유 →석류 한 알과 무너진 벽으로 읽는 피렌체 성모자 그림의 상징 →흩어지지 않고 액자째 남은 비바리니의 다섯 장면 제단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