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토 하나로 몸을 지운 이집트 중왕국의 조각 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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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은 남자의 몸이 어깨에서 발끝까지 매끈한 돌덩어리 하나로 보인다. 팔도 다리도 따로 깎지 않았다. 망토로 온몸을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집트 중왕국의 조각 가운데 이런 덩어리 형식을 잘 보여 주는 세 점을 골랐다. 앉은 상이 하나, 선 상이 하나, 그리고 이 형식에서 살짝 비껴난 작은 상이 하나다.
| 작품 | 자세 | 재료 | 시대 |
|---|---|---|---|
| 망토를 두른 좌상 | 앉음 | 석회암 | 중왕국(13왕조) |
| 망토를 두른 입상 | 서 있음 | 노란 석회암 | 중왕국(12왕조 중반 이후) |
| 비대칭 자세의 좌상 | 한쪽 무릎을 세움 | 노란 리모나이트 | 중왕국 |
팔다리를 깎지 않은 까닭
「망토를 두른 좌상」의 남자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가발에 목걸이를 걸고, 몸 전체를 망토로 감쌌다. 망토 밖으로 나온 것은 가슴에 얹은 한 손뿐이다.
이 형식이 유행한 데는 실용적인 사정이 있었다. 팔다리처럼 가늘게 튀어나온 부분은 깎다가 부러지기 쉽고 시간도 많이 든다. 망토로 덮어 한 덩어리로 만들면 돌이 덜 부러지고 품도 줄어든다. 신전에 봉헌하거나 무덤에 두는 중간 크기의 상이라면 그만한 장점이 컸다.
「망토를 두른 입상」도 같은 원리로 만들었다. 발목까지 오는 망토를 두르고 선 몸이 기둥 하나처럼 단순해졌다. 돌을 덜 깎으려고 고른 방식인데, 결과는 오히려 단정하고 세련된 인상으로 남았다. 받침대까지 한 덩어리로 깎은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몸이 이렇게 단순하니 퍼즐도 대체로 수월해서, 세 점 모두 24조각이나 48조각이면 넉넉하다. 세부가 몰린 얼굴과 가발을 먼저 맞추면 인물이 어느 쪽을 보는지가 정해진다. 막히는 곳은 돌을 아끼려고 만든 그 덩어리, 망토다. 무늬가 거의 없어 몸통 조각끼리 닮아 보이니, 옅은 그림자가 지는 방향으로 가르고 망토와 배경이 만나는 경계부터 붙여 안쪽으로 들어간다. 망토 밖으로 나온 손이나 받침대 위의 발은 형태가 뚜렷해서 보이는 대로 먼저 끼워 둔다.
두 사람 모두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짐작할 실마리는 있다. 좌상의 가발과 목걸이는 그가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이었음을 알려 주고, 입상의 매끄럽게 다듬은 표면에서는 들인 공이 보인다. 이름은 사라졌어도 조각의 품질과 장신구가 신분을 은근히 대신 말해 준다. 왕족이 아닌 사람들이 어떤 조각을 남겼는지는 이집트의 평민 조각에서 더 넓게 볼 수 있다.
무릎 하나를 세운 작은 상
「비대칭 자세의 좌상」은 앞의 두 점과 결이 다르다. 높이 14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소상으로, 한쪽 무릎을 세우고 다른 다리는 접은 채 앉았다. 그 무릎이 만드는 대각선이 이 상에서 가장 특이한 윤곽이라, 퍼즐에서는 그 조각 하나만 찾으면 나머지 자세가 따라 잡힌다. 작은 상이니 24조각으로 시작해도 충분하다.
이집트 조각이라면 대칭과 정면성 같은 관습을 엄격하게 지켰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한쪽 무릎을 세운 자세는 중왕국 시대의 작은 개인상에서 심심찮게 나온다. 큰 신전에 서는 상이나 왕의 조각이었다면 규칙을 지켰겠지만, 보통 사람의 작고 사적인 물건에는 그 규칙이 느슨하게 적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이나 신전에 두었을 이런 소상은 만든 사람의 솜씨에 따라 편차도 컸다고 한다. 공식 규범이 어디서 헐거워지는지를 보여 주는 조각이다.
같은 발상, 다른 선택
셋을 나란히 놓으면 망토로 몸을 덮는다는 같은 발상 안에서도 선택이 조금씩 갈린다. 좌상은 앉은 자세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다. 입상은 기둥처럼 곧게 솟았고, 비대칭 좌상은 규칙을 슬쩍 벗어난 자유로움이 있다. 재료도 흰 석회암, 노란 석회암, 노란 리모나이트로 다 다르다. 머리쓰개와 코브라로 신분을 드러낸 이름 없는 왕족 조각과 비교해 보면, 이 사람들은 훨씬 조용한 방식으로 자기를 남겼다.
이 세 점은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다. 팔다리를 깎지 않겠다는 계산에서 출발했는데, 그 계산이 단정하고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으로 이어졌다. 돌을 아끼려던 장인의 선택이 지금 보아도 세련돼 보인다는 게 조금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