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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도 왕으로 알아보는 이집트 12왕조 왕족 조각 네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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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깎은 얼굴 하나가 있다고 해 보자. 코끝은 깨졌고, 받침에 새겼을 이름은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이마 위에 코브라 한 마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집트 미술」 분류에는 이름을 잃은 조각이 여럿 있는데, 그중 네 점은 왕만 쓸 수 있던 표식 덕분에 이름 없이도 왕이나 왕비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작품재료시대소장 경위
왕의 두상 (아메넴하트 4세 추정)석회암12왕조(?)로저스 기금, 1908
왕의 두상규암13왕조 초J. 피어폰트 모건 기증, 1912
스핑크스로 표현된 센우스레트 3세편마암12왕조에드워드 하크니스 기증, 1917
왕족 여인가바로12왕조로저스 기금, 1908

줄무늬 머리쓰개와 이마의 코브라

왕의 두상 (아메넴하트 4세 추정)이 그림을 퍼즐로 맞춰보기 → 쉬움은 약 5분

「왕의 두상 (아메넴하트 4세 추정)」이 쓰고 있는 건 네메스라는 머리쓰개다. 이마 위로 줄무늬가 흐르고 양옆으로 자락이 늘어진다. 왕만 쓸 수 있었으니 이름이 없어도 왕의 두상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이집트 왕 조각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표식도 이것이다.

왕족 여인

「왕족 여인」은 코브라로 신분을 밝힌다. 이마의 코브라 역시 왕족에게만 허락된 장식이어서, 이 여인은 왕비 아니면 공주였으리라. 코와 입이 넓고, 세 갈래로 갈라진 긴 가발을 썼다. 검은 돌 흉상은 가슴 아래가 떨어져 나갔는데도 이마에 남은 코브라 장식의 흔적 하나로 누구였는지 짐작하게 해 준다.

이름이 지워진 자리를 왕관과 코브라 같은 상징이 대신 지키고 있다.

주름진 얼굴과 매끈한 얼굴

이름이 없으면 연대도 모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이집트 조각은 정해진 표현 관습을 따랐어도 시대마다 얼굴을 표현하는 유행이 있었고, 그걸로 대략의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왕의 두상

「왕의 두상」(규암)에서는 입가의 긴장과 처진 눈 밑이 먼저 들어온다. 센우스레트 3세와 아메넴하트 3세의 초상처럼 이 무렵 왕들은 진지하고 나이 든 얼굴로 새겨졌다. 이름표가 없어도 주름과 표정만 보고 12왕조 후기, 그러니까 센우스레트 3세 이후로 짐작하게 되는 까닭이다.

「왕의 두상 (아메넴하트 4세 추정)」은 흐름이 다르다. 이 시기 왕의 얼굴은 센우스레트 3세의 주름진 표정을 지나 다시 젊고 부드러운 쪽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고 하고, 이 두상의 인상도 거기에 닿아 있다. 근엄하고 늙은 얼굴이 한동안 유행하다가 젊고 매끈한 얼굴로 되돌아왔다. 얼굴 하나로 왕조의 흐름을 읽어 내는 일, 이집트 조각을 보는 재미 중 하나다.

사자의 몸에 얹힌 왕의 얼굴

스핑크스로 표현된 센우스레트 3세

「스핑크스로 표현된 센우스레트 3세」는 넷 중 유일하게 이름이 확인된 왕이다. 얼굴에는 센우스레트 3세 특유의 주름지고 진지한 표정이 그대로 있어서, 같은 왕의 다른 얼굴 조각과 나란히 두고 보면 재미있다.

이름이 남은 이 스핑크스가 있기에 오히려 비교의 기준이 생긴다. 센우스레트 3세가 어떤 얼굴이었는지 먼저 확인하고, 이름 없는 두상들이 그 얼굴을 닮았는지 따져 볼 수 있으니까. 재료는 짙은 회색과 녹색이 줄무늬처럼 섞인 편마암 한 덩어리다. 청동 도구밖에 없던 시대에 이토록 단단한 돌을 이만큼 매끄럽게 다듬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술을 과시하는 일이었다.

네메스 줄무늬에서 오래 머문다

네 점 다 단색 돌 한가운데 얼굴이나 인물이 놓인 구도라, 맞추기 전에 돌 색으로 조각을 나눠 두면 한결 편하다. 석회암은 밝고 규암은 붉은빛이 돌며, 편마암에는 회색과 녹색 줄무늬가, 가바로에는 검은색이 있어 그림자와 하이라이트를 가르기 쉽다. 정작 손이 오래 머무는 곳은 네메스다. 줄무늬가 조각마다 조금씩 다른 각도로 기울어 있어서, 비슷해 보이는 줄무늬 조각을 기울기대로 늘어놓고 이마에서 어깨 쪽으로 내려가며 끼운다. 코끝이나 가슴 아래처럼 깨져 나간 경계는 모양이 뚜렷하니 일찍 붙여 둔다. 스핑크스는 돌의 결이 갈기와 몸통 곡선을 따라 흐르므로 그 결을 따라 잇는다. 두상은 2448조각이면 금방 얼굴이 서고, 형태가 복잡한 스핑크스는 48100조각으로 올려도 결이 길을 잡아 준다.

이름보다 오래 남은 것

네 점을 함께 놓으면 묘한 역설이 보인다. 아메넴하트 1세의 무너진 신전에서 나온 판처럼, 이집트 왕들은 자기 이름을 카르투슈에 새기고 신전 벽에 되풀이해 적었다. 그런데 3800년이 흐른 지금, 그 이름 상당수는 조각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닳아 없어졌다. 살아남은 건 머리쓰개와 코브라, 얼굴 표정 같은 형식이고, 그 형식이 이 사람들이 어떤 신분이었는지를 지금도 말해 준다.

만든 사람의 이름이 남지 않는 일은 흔하다. 작가 미상이 뜻하는 것에서 그 이야기를 했는데, 이 네 점은 한 걸음 더 나가서 새겨진 사람의 이름까지 잃었다. 이름은 그토록 공들여 새겨도 사라지는데, 머리쓰개 한 장과 코브라 하나는 3800년을 버텼다.

이 글에서 소개한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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