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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조각은 왜 왼발부터 내딛을까, 3천 년 동안 지킨 자세의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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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남자는 모두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앉은 왕은 모두 두 손을 무릎에 얹었다. 이집트 미술 39점을 차례로 넘겨 보면 이런 장면이 되풀이된다. 몇백 년씩 떨어진 작품들이 한 공방에서 나온 것처럼 닮았다.

잘못 본 게 아니다. 이집트 조각에는 자세에 관한 약속이 있었다. 그 약속을 알고 나면 조각상이 훨씬 잘 읽히고, 퍼즐 조각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서 있는 남자는 왼발부터 나간다

걷는 남자의 소상이 그림을 퍼즐로 맞춰보기 → 쉬움은 약 5분

「걷는 남자의 소상」은 높이 32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돌 조각이다. 어깨까지 오는 가발을 쓰고 맨 가슴에 긴 치마를 두른 남자가, 두 팔을 몸에 붙인 채 왼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이집트 남성 입상의 기본형이 이 자세였다. 고왕국에서 로마 시대까지 3천 년 가까이 거의 그대로 쓰였다고 한다. 그리스 초기 조각의 쿠로스(젊은 남자 입상)가 여기서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걷는 순간을 붙잡은 모습은 아니다. 뒤꿈치는 바닥에 붙어 있고, 몸은 뒤로 젖혀지지도 앞으로 쏠리지도 않는다. 걸어 나가기 직전에 멈춘 상태, 말하자면 “영원히 걸어 나갈 준비가 된 모습”에 가깝다. 왜 하필 왼발이었는지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앉은 왕은 손을 무릎 위에 둔다

센우스레트 1세 좌상

「센우스레트 1세 좌상」은 머리가 사라지고 몸통만 남은 왕의 좌상이다. 넓은 어깨와 무릎 위에 놓인 두 손, 정면을 향한 몸이 반듯하다. 높이가 1미터를 넘고 어두운 돌 표면은 매끄럽게 갈려 있다.

앉은 상의 약속도 분명하다. 정면을 보고, 좌우가 대칭이고, 손은 무릎 위. 몸을 비틀거나 시선을 옆으로 돌리는 일은 없다.

머리가 없는데 누구의 상인지는 어떻게 알까. 치마 위와 옆면에 새겨진 상형문자가 알려 준다. 이집트 조각에서 인물이 누구인지 정하는 건 얼굴 생김새보다 이름 글자였고, 조각상은 그 이름을 영원히 남겨 두는 그릇에 가까웠다.

미라처럼 감싼 오시리스 형상

센우스레트 1세의 오시리스 형상

같은 왕인데 「센우스레트 1세의 오시리스 형상」은 분위기가 딴판이다. 높이 1.8미터의 흰 석회암 입상으로, 몸을 미라처럼 천으로 감쌌고 두 팔은 가슴 앞에서 교차했다. 머리에는 높은 관을 썼고 등은 뒤쪽 기둥에 붙어 있다.

이게 오시리스 형상이다. 죽음과 부활을 맡은 신 오시리스의 모습을 왕에게 겹쳐, 왕이 죽어서도 다시 살아난다는 뜻을 담았다. 센우스레트 1세의 피라미드 신전에는 이런 상이 기둥마다 줄지어 서 있었다고 하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발굴단이 20세기 초에 그중 일부를 가져왔다. 지금은 흰 돌 그대로지만 신전에 서 있을 때는 채색되어 있었을 것으로 본다.

좌상 속 왕은 힘센 젊은 몸이고, 이 상의 왕은 미라처럼 감싼 몸이다. 한 왕이 자세를 바꿔 가며 살아 있는 왕과 부활하는 왕을 함께 맡았다.

약속을 깬 얼굴, 센우스레트 3세

약속이 이렇게 강했으니 예외는 금방 눈에 띈다.

센우스레트 3세의 얼굴

「센우스레트 3세의 얼굴」은 붉은 규암으로 만든 16센티미터 남짓한 얼굴 조각이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고 코와 입 사이에 깊은 주름이 졌으며 입꼬리는 처졌다.

이집트 조각은 대개 왕을 영원히 젊고 완벽하게 표현했다. 기원전 19세기의 이 왕만은 지치고 근심 어린 얼굴로 남았다. 실제 얼굴을 옮긴 것인지, “백성을 걱정하는 왕”이라는 이념을 새긴 것인지는 해석이 갈린다. 어느 쪽이든 앞의 두 상 옆에 두고 보면, 자세는 규칙을 따르더라도 얼굴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는 게 드러난다.

발바닥에서 머리선까지 18칸

규칙은 자세에만 있지 않았다. 몸의 비율에도 있었다. 이집트 미술가들은 그림과 조각의 밑그림에 격자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서 있는 인물은 발바닥에서 머리선까지를 일정한 칸 수(고왕국과 중왕국에서는 18칸이라고 한다)로 나누고, 어깨와 무릎, 팔꿈치가 몇 번째 칸에 오는지 정해 두었다.

그림을 격자로 나누고 한 칸씩 채운다는 점에서 퍼즐과 묘하게 닮았다. 다만 이건 일반적으로 알려진 설명일 뿐이고, 여기 소개한 작품들에 격자 흔적이 직접 보이지는 않는다.

정해진 자세가 퍼즐에서 주는 힌트

자세가 정해져 있다는 건 퍼즐에서 윤곽선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 있는 상은 세로로 좁고 길어서 조각 배열도 그만큼 좁아진다. 얼굴, 가발, 받침대처럼 특징이 분명한 조각을 먼저 잡고 그 사이 몸통을 채우는 순서가 편하다. 좌상은 좌우가 대칭이라 왼쪽 무릎 조각을 찾으면 오른쪽 무릎도 같은 높이에 온다. 한쪽을 맞추면 다른 쪽 자리가 저절로 보인다.

어두운 돌은 몸통의 진한 조각끼리 구분하기 어렵다. 그럴 땐 무릎과 팔, 치마 주름에 빛이 반사된 밝은 선을 기준으로 삼는다. 배경이 고르면 단색 면이 넓은 그림의 공략법대로 가장자리부터 두르고 안으로 좁혀 들어가면 된다. 세로로 아주 긴 그림은 조각이 가늘게 나오니 24조각보다 48조각으로 시작하는 쪽을 권한다. 이집트 작품 전반에 통하는 요령은 이집트 석상 퍼즐 가이드에 따로 있다.

같은 규칙, 다른 손

이 조각들을 만든 사람의 이름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작가 미상이 뜻하는 것에서 이야기했듯, 이집트 조각가는 이름보다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3천 년 동안 같은 자세를 되풀이하면서도 돌마다 손맛이 다르다. 규칙 안에서 벌인 아주 작은 차이의 경쟁이었을지도 모른다.

퍼즐을 맞추다 보면 그 작은 차이가 조각 하나하나에서 보인다.

이 글에서 소개한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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