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목록

왕족이 아니어도 조각상을 남긴 이집트의 재상, 유모, 석공

작성

검은 돌에 새긴 명문은 그녀를 “유모 시트스네프루”라고 부른다. 왕비도 공주도 아닌 유모가 자기 이름을 단 조각상을 남겼다. 「이집트 미술」 부문에는 왕과 왕비의 조각이 여럿 있지만, 이렇게 왕족이 아닌 사람의 조각상도 네 점 있다. 재상, 석공 감독, 유모, 그리고 이름만 전하는 한 사람이다.

작품신분재료소장 경위
재상 이우이의 상재상나무로저스 기금, 1923
석공 감독 센베부와 가족석공 감독사암다지 기금, 1956
유모 시트스네프루의 상왕실 유모가바로 또는 휘록암로저스 기금, 1918
이케르 상의 상반신이름만 확인석회암, 채색 흔적하크니스 기증, 1926

긴 옷을 입은 재상

재상 이우이의 상이 그림을 퍼즐로 맞춰보기 → 쉬움은 약 5분

「재상 이우이의 상」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두 팔을 내린 채 서 있는 나무 조각상이다. 재상은 이집트에서 왕 다음가는 관직이었고, 긴 옷은 재상의 정장이었다. 그 차림새를 온전히 보여 주는 상은 드물다.

왕족은 아니어도 나라의 행정을 모두 맡아 보던 자리였다. 나무는 돌보다 가늘고 긴 몸을 깎기 쉬워서 이런 비율이 나온다. 높이가 90센티미터에 가까운 이 상은 길쭉한 몸과 작은 얼굴, 나무 조각다운 표현으로 높은 신분을 드러낸다.

한 돌에 앉은 석공 감독의 가족

석공 감독 센베부와 가족

넷 중 가장 특이한 건 「석공 감독 센베부와 가족」이다. 사암 한 덩어리에 남자 하나와 여인 둘이 나란히 앉아 있다. 명문에 따르면 가운데가 석공 감독 센베부이고 양옆이 그의 가족이다.

왕이나 고관이 아닌 장인 계층의 가족상이라 드물다. 석공 감독이 자기 가족상을 손수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돌 다루는 일을 감독하던 사람이 제 가족을 위해 직접 정을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이 상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가족을 한 돌에 함께 새긴 데는 죽은 뒤에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담겼을 것이다.

유모가 누린 자리

유모 시트스네프루의 상

「유모 시트스네프루의 상」은 검은 돌로 깎은 여인의 좌상이다. 이집트에서 왕이나 귀족의 아이를 기른 유모는 꽤 높은 대우를 받았고, 자기 이름으로 조각상을 세울 수 있었다.

아기 돌보는 일을 넘어 조각상을 남길 만큼 인정받는 자리였다는 얘기다. 여성 좌상은 남성상보다 적게 남아서, 이 상은 중왕국 여성의 옷과 가발 모양을 보여 주는 자료로도 귀하다. 가바로나 휘록암처럼 단단한 검은 돌은 다듬기가 까다로웠으니 그 돌을 썼다는 것 자체가 재력의 표시였다.

이름 하나만 남은 이케르

이케르 상의 상반신

「이케르 상의 상반신」은 허리 아래가 사라진 작은 조각이다. 팔을 가슴 앞에 엇갈린 자세는 죽은 이가 저승의 신 오시리스와 같은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뜻과 이어진다.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건 이름뿐이다. 새겨진 이름 덕에 이케르의 상인 줄 알 뿐, 직함도 사연도 남지 않았다. 그래도 그 이름은 3900년을 건너 지금까지 왔다.

조각상은 왕만의 것이 아니었다

네 점을 나란히 놓으면 이집트에서 조각상이 왕족만의 몫이 아니었음이 분명해진다. 나라 최고위직의 재상, 장인 계층의 석공 감독, 궁정에서 일한 여성까지 모두 자기 이름을 새긴 상을 남겼다. 서 있든 앉아 있든 자세와 비율은 정해진 약속을 따랐는데, 그 약속은 이집트 조각의 표현 관습에서 따로 다뤘다.

크기나 화려함으로는 왕의 스핑크스나 신전 부조에 견줄 수 없다. 대신 이름이 남았다. 이름이 사라진 왕족 조각과 나란히 두면 묘하다. 이름 잃은 왕과 이름 지킨 평민이 같은 시대에서 와 같은 미술관에 서 있다.

재료 색부터 갈라 놓기

네 점 모두 단색 배경 앞에 나무나 돌 덩어리 하나가 놓여 있다. 붉은 갈색 나무, 회색 사암, 검은 가바로, 채색 흔적이 남은 석회암으로 재료의 색이 저마다 달라서, 조각상과 배경의 경계는 어느 그림에서든 쉽게 찾는다. 이케르 상은 허리 아래 절단면이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이 되어 주니 그 선부터 이어 간다.

오래 붙잡게 되는 건 센베부 가족상이다. 회색 사암 하나에 세 사람이 어깨를 붙이고 앉아 있어서, 조각만 봐서는 누구의 팔이고 누구의 옷자락인지 헷갈린다. 가운데 센베부의 윤곽을 먼저 세우고 양옆 여인을 하나씩 붙인다. 다른 세 점은 24~48조각이면 넉넉하고, 인물이 셋인 이 가족상은 100조각까지 올려도 볼거리가 남는다. 부문 전체를 풀 때의 요령은 이집트 미술 퍼즐 가이드에 있다.

왕은 신전과 피라미드로 기억되기를 바랐고, 재상과 유모와 석공 감독은 작은 조각상 하나에 이름을 걸었다. 무덤에 세운 상이 3900년 뒤 남의 손에서 다시 맞춰지리라고는 그들도 몰랐겠지만, 이름을 남기려던 바람만큼은 꽤 멀리까지 닿았다.

이 글에서 소개한 퍼즐

이어서 읽으면 좋은 글

색이 없는 이집트 석상 퍼즐, 무엇을 보고 맞출까 →이집트 조각은 왜 왼발부터 내딛을까, 3천 년 동안 지킨 자세의 규칙 →이름 없이도 왕으로 알아보는 이집트 12왕조 왕족 조각 네 점 →분열된 이집트를 다시 하나로 만든 멘투호테프 2세와 조각 네 점 →같은 사람을 네 번 새긴 메레르 목조상, 나란히 맞춰 보기 →망토 하나로 몸을 지운 이집트 중왕국의 조각 세 점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부적이었던 이집트 무덤 속 인형 두 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