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월러가 그린 14번가 시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스케치 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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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전시실 한가운데 난간을 두른 흉상이 서 있고, 벽 위 선반에는 도자기가 줄지어 놓였다. 열린 문 너머로 관람객 몇이 보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전시실을 그린 스케치인데, 우리가 아는 센트럴파크 옆의 그 거대한 건물이 아니다. 여기 퍼즐은 모두 메트로폴리탄이 공개한 소장품인데, 그 속에 미술관이 자기 옛집을 그린 그림이 섞여 있다.
소묘 부문에 있는 프랭크 월러(1842~1923)의 네 장이 그렇다. 제목마다 “14번가”라는 말이 붙어 있고, 옛 미술관의 전시실과 계단을 그렸다.
14번가에서 센트럴파크로
지금의 메트로폴리탄은 센트럴파크 옆 웅장한 건물에 있지만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건 아니다. 소장처 설명을 보면 미술관은 1873년부터 1880년까지 14번가의 저택을 빌려 썼고, 1880년에 센트럴파크의 지금 건물로 옮겼다.
이 네 장은 이사 직전의 기록이다. 두 장에는 1879년과 1880년이라는 날짜가 붙었고, 나머지 두 장은 연대가 없지만 같은 무렵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곧 비워질 방들을 화가가 붙잡아 두었다.
월러는 이 스케치들을 바탕으로 1881년에 유화 「14번가 시절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내부」를 완성했다. 여기 있는 건 그 유화가 아니고, 거기까지 가는 준비 과정이다. 화가의 작업대 위를 슬쩍 엿보는 기분이 든다.
연필, 펜, 분필, 먹물
네 장은 재료가 다 다르다. 소장처 정보에 적힌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 작품 | 연대 | 재료 |
|---|---|---|
| 「14번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M’실」 | 연대 미상 | 펜, 잉크, 흑연 |
| 「‘M’실 스케치」 | 1879 | 흑연에 흰색 덧칠 |
| 「계단과 발코니 습작」(연필) | 연대 미상 | 연필과 분필 |
| 「계단과 발코니 습작」(담채) | 1880 | 인디아 잉크 담채 |
흑연은 형태를 빨리 잡을 때 쓰고, 거기에 흰색을 살짝 얹으면 빛 받는 자리가 살아난다. 펜과 잉크는 선을 못박는 단계다. 인디아 잉크 담채는 먹물을 물에 풀어 명암을 칠하는 방식이다.
계단은 두 번 그렸다. 한 장은 연필과 분필로, 한 장은 인디아 잉크 담채로. 난간이 두 번 꺾이며 올라가는 모양도, 벽에 걸린 액자들도 거의 같은 구도다. 연필 쪽은 난간 기둥 하나하나와 그림 배치를 정하는 밑작업에 가깝고, 담채 쪽은 거기에 명암을 입혀 완성 쪽으로 한 걸음 더 나간 모습이다. 같은 장소를 도구를 바꿔 가며 다시 들여다본 흔적이다. 형태를 빨리 잡는 데는 흑연이, 선을 정하는 데는 펜이, 빛과 그림자를 시험하는 데는 먹물이 어울렸으리라. 연대 없는 두 장 때문에 어느 것이 먼저인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넷을 함께 놓으면 유화 한 점을 위해 한 공간을 여러 방식으로 뜯어본 화가의 손이 보인다.
저택의 좁은 방
맨 처음에 말한 장면이 ‘M’실 그림이다. 퍼즐 페이지 해설에도 적었듯, 좁은 전시실에 난간으로 둘러싼 흉상이 서 있고 벽 위 선반에 도자기가 늘어서 있으며, 열린 문 너머로 관람객이 보인다.
지금 미술관의 전시실과는 규모부터 다르다. 저택의 방 몇 칸을 전시실로 쓰던 때라 방이 좁고 천장도 낮았으리라. 지금의 거대한 미술관도 이런 방에서 출발했다는 걸 그림 한 장이 알려 준다.
선이 굵은 조각에서 시작하기
네 장 모두 색이 거의 없어서 선의 굵기를 보고 맞춘다. 문틀의 직선, 난간의 세로 기둥, 흉상의 어두운 덩어리처럼 진한 곳을 먼저 집는다. 계단 두 장에서는 벽에 걸린 액자들이 비슷한 네모로 줄지어 있어 헷갈리는데, 두 번 꺾이며 올라가는 난간을 먼저 이어 두면 액자들이 그 위아래로 갈린다. 바닥이나 벽처럼 선이 성긴 조각은 그것만 봐서는 구별이 안 되니, 미리보기에 겹쳐 보이는 격자로 자리를 짐작한다. 그림이 없는 종이 여백은 끝까지 남기 쉬우니 바깥에서 안쪽으로 채워 들어간다. 고야의 투우 판화처럼 선과 명암으로만 된 그림에서 쓰던 요령과 같다. 색이 없는 그림이라 24조각이나 48조각 정도로 적게 잘라야 지루해지지 않는다.
같은 방을 들여다보는 세 사람
이 스케치를 퍼즐로 맞출 수 있는 건 메트로폴리탄이 소장품 이미지를 누구나 쓰도록 열어 두었기 때문이다. 이 사이트의 그림이 무료인 이유에서 이야기한 그 정책 덕분이다.
미술관이 제 옛 모습을 담은 스케치까지 내놓았고, 그걸 우리가 조각조각 맞춘다. 미술관과 화가와 퍼즐 앞에 앉은 사람이 100년 넘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같은 방을 들여다보고 있다. 퍼즐로 배우는 미술 감상법에서 말한 “오래 들여다보기”에 이만큼 들어맞는 그림도 드물다. 흉상 둘레의 난간을 한 조각씩 이어 붙이다 보면, 이제는 사라진 14번가의 그 방에 잠깐 들어가 서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