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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꿰매 단 인도 서부의 자수는 어떻게 런던 상점까지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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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거울을 단다니, 처음 들으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진짜 거울 조각을 실로 감싸 천에 고정하는 자수 기법이 있다. 인도 서부와 지금의 파키스탄 신드 지역에서 오래 이어져 온 방식이다. 이 기법으로 만든 옷이 두 점 있는데, 하나는 그 지역 사람이 실제로 입던 바지고, 다른 하나는 런던의 이름난 상점을 거쳐 유럽 상류층 손에 들어간 드레스다. 같은 기법이 전혀 다른 길로 갈라졌다.

작품부위색
드레스전신검은 천에 붉은 실과 금색 격자
바지무릎 아래주황 비단에 붉은 꽃무늬

자수는 무릎 아래에만

바지이 그림을 퍼즐로 맞춰보기 → 쉬움은 약 5분

바지는 주황색 비단으로 지었다. 한쪽 가랑이를 펼쳐 보면 위쪽은 무늬 없는 비단 그대로다. 무릎 아래부터 붉은 꽃무늬와 작은 거울 조각이 촘촘히 이어지고, 발목에는 흰색과 붉은색 자수 띠가 둘렸다.

왜 무릎 아래만 꾸몄을까. 이런 바지는 긴 상의 밑에 받쳐 입어서, 걸을 때 옷자락 밑으로 보이는 데가 무릎 아래뿐이었다. 안 보이는 곳에는 공을 들이지 않았다. 발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이라 자수 부분이 다리에 착 붙어 보였으리라. 주황은 이 지역에서 축제와 혼례에 즐겨 쓰던 색이었다.

퍼즐도 그 무릎 선에서 갈린다. 무늬 없는 위쪽 비단은 주황 한 색이라 맨 나중으로 미루고, 무릎 아래 꽃무늬와 거울 조각은 반짝임으로, 발목의 자수 띠는 색 대비로 가른다.

리버티 상회의 진열장을 거쳐

드레스

드레스는 얇아서 속이 비치는 검은 천으로 지었다. 가슴에는 붉은 실과 작은 거울 조각으로 마름모 무늬를 놓은 판이 V자로 내려오고, 몸통 전체에 가는 금색 격자무늬가 흩어져 있다.

소장품 기록에 이 드레스는 “리버티 상회”라는 이름과 함께 남아 있다. 19세기 말 런던의 리버티는 인도와 동아시아의 직물과 옷을 들여와 유럽 상류층에게 팔던 상점이었다. 그 무렵 유럽에서는 이런 옷을 “동양풍” 실내복으로 즐겨 입었다. 거울 자수와 마름모 무늬는 인도 서부 전통 그대로인데, 재단은 유럽 취향에 맞게 손봤을 수도 있다. 한 고장의 기법이 상품이 되어 먼 나라까지 팔려 간 흔적이다.

퍼즐은 가슴의 V자 판에서 쉽게 시작되지만 몸통으로 내려오면 곧 막힌다. 비치는 검은 천에 가는 금색 격자만 흩어져 있어 조각마다 거의 똑같아 보이고, 이슬람 의상의 반복 무늬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비가 약한 곳은 조각 속 무늬의 결과 방향을 하나하나 견주며 버틴다. 두 점 모두 자수가 촘촘해서 48조각에서 100조각 사이로 맞춰야 무늬가 뭉개지지 않는다.

입는 사람의 옷, 파는 사람의 옷

둘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기법이 얼마나 다른 삶을 살 수 있는지 보인다. 바지는 그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의 몸에 맞춰 지었다. 어디를 꾸미고 어디를 비워 둘지도 입는 사람의 필요가 정했다. 드레스는 원래 쓰임에서 떨어져 나와 상점 진열장을 지나, 다른 대륙 다른 문화의 취향에 맞게 다시 태어났다. 거울 조각은 똑같이 반짝이는데 그 반짝임이 뜻하는 바는 달라졌다.

인도 서부와 신드 지역의 자수 전통은 인도 남성의 겉옷에서 거울 쿠르타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거기에 이 두 점을 더하면 한 지역의 손기술이 남성복과 여성복을 지나 국경 너머 진열장까지 닿은 길이 그려진다. 바늘과 실은 소녀들이 이름을 수놓은 샘플러처럼 한 사람의 이야기를 품기도 하고, 이 두 점처럼 지리와 계급, 무역의 이야기를 품기도 한다. 같은 거울 조각이 한쪽에서는 걸음을 뗄 때마다 발목에서, 다른 쪽에서는 런던 상점의 진열장에서 반짝였다.

이 글에서 소개한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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