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만 보면 마을이 보이는 시리아 축제복과 알바니아 혼례복
작성 · 수정
붉은 드레스는 밑단 양옆에 자수 판을 달았고, 미색 드레스는 앞면 자수를 지붕처럼 뾰족하게 모았다. 그 차이가 곧 두 마을의 차이다. 「이슬람 미술」 부문에는 시리아 여성이 실제로 입던 옷이 세 벌 있다. 두 마을의 축제 드레스, 그리고 축제복 한 벌을 통째로 갖춘 세트다. 여기에 같은 부서가 소장한 알바니아 혼례복 두 벌을 더했다. 시리아 옷은 대개 20세기 초, 알바니아 혼례복은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 재료는 면과 비단, 아마이고 자수에는 금속사가 섞였다.
| 작품 | 연대·제작지 | 재료 | 소장 경위 |
|---|---|---|---|
| 쿠테이페 축제 드레스 | 20세기 초 무렵 | 면, 비단, 자수 | 아이린 르위손 유증, 1969 |
| 칼라문 축제 드레스 | 20세기 초로 추정 | 면, 비단, 금속사, 자수 | 클라라 조번하임 기증, 1952 |
| 시리아 의상 한 벌 | 19세기 말~20세기 초 | 아마, 비단, 금속사, 자수 | 르위손·크롤리 기증, 1939 |
| 혼례용 겉옷 (붉은색) | 19세기 후반, 알바니아 티라나·두러스·카바예 | 비단, 면, 금속사 | 버타 메이 테일러 기증, 1988 |
| 혼례용 겉옷 (검은색) | 19세기 후반, 알바니아 엘바산 | 비단, 면, 금속사 | 버타 메이 테일러 기증, 1988 |
자수로 마을을 가르다
쿠테이페 축제 드레스는 붉은 면 바탕이다. 목둘레에 짙은 색 자수 판이 있고, 밑단 양옆에는 마름모와 꽃무늬 자수 판이 붙었으며, 소매 끝은 뾰족하게 늘어진다. 쿠테이페는 다마스쿠스 북쪽의 마을이다. 이 지역 여성 축제복은 붉은 바탕에 밑단과 소매의 자수로 마을을 구분했다고 한다. 뾰족한 소매는 춤출 때 흔들리라고 만든 것이고, 평소 걸을 때는 소매 끝을 뒤로 묶어 올렸다.
칼라문 축제 드레스는 미색 면 바탕이다. 가슴 아래부터 밑단까지 이어지는 자수 판이 위로 올라가며 뾰족한 삼각형으로 모인다. 칼라문은 다마스쿠스와 홈스 사이의 산악 지역으로, 이곳 축제복은 앞면 자수 판을 지붕처럼 뾰족하게 마무리하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두 벌을 나란히 세우면 차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쿠테이페는 밑단 양옆에, 칼라문은 앞면 전체에 지붕 모양으로 자수를 놓았다. 바탕색과 자수 배치만 가지고 두 마을이 갈린다.
맞출 때도 자수 판의 경계부터 잇게 된다. 경계가 서면 화면이 몇 구역으로 나뉜다. 칼라문 쪽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삼각형의 꼭짓점이 화면에 하나뿐이라, 그 조각을 먼저 찾아 놓고 양쪽 빗변을 따라 내려온다.
머리끝까지 갖춘 축제 차림
「시리아 의상 한 벌」은 드레스 한 장이 아니다. 여러 벌이 한 세트로 소장되어 있고, 소장처 정보의 제목부터가 “축제 드레스, 아바야, 아갈 머리끈, 머릿수건 두 장을 갖춘 시리아 의상 한 벌”이다.
드레스와 겉옷(아바야), 머리를 고정하는 끈(아갈), 머릿수건 두 장이 함께 묶인 덕에 시리아 여성이 축제 때 실제로 어떻게 차려입었는지 알 수 있다. 드레스만 보면 놓치게 되는 것들, 그러니까 그 위에 무엇을 걸치고 머리를 어떻게 감쌌는지까지 이 항목 하나에 담겼다. 앞면의 격자무늬 자수 판은 지역마다 무늬가 달랐고, 아마천은 시리아 직물의 전통 재료였다고 한다.
여러 옷이 겹쳐 있으니 맞출 때는 재질과 색으로 먼저 크게 나눈다. 드레스의 삼각형 자수 판, 겉옷의 붉은 천, 머릿수건. 세부는 그다음에 채운다.
금실로 수놓은 알바니아 혼례복
붉은 혼례용 겉옷과 검은 혼례용 겉옷은 둘 다 소매 없는 긴 겉옷이고, 금속사로 꽃과 잎, 덩굴무늬를 수놓았다. 길이는 116센티미터와 114센티미터로 거의 같다.
시리아 옷과 함께 있지만 메트 기록에 따르면 두 벌은 알바니아에서 만들었다. 붉은 옷은 티라나·두러스·카바예, 검은 옷은 엘바산으로 적혀 있으니 서로 다른 고장의 옷이다. 1988년 같은 기증자에게서 들어왔다. 알바니아는 20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고, 이 옷들이 이슬람 미술부에 있는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소장 기록상 두 벌 모두 겉옷 하나로 끝나지 않고 여러 부분(붉은 옷 일곱, 검은 옷 여섯)으로 이루어진 한 벌이며, 사진은 그 가운데 긴 겉옷을 찍었다.
붉은 옷은 무늬가 바탕 전체를 빽빽하게 덮었다. 검은 옷은 앞섶과 밑단, 옆선 가장자리에만 무늬를 모았다. 금속을 감은 실은 무겁고 뻣뻣해서 옷 전체보다 가장자리에 몰아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붉은 옷 쪽에 재료도 품도 훨씬 많이 들었다.
이런 옷에 왜 그렇게 공을 들였을까. 금속사 자수는 재료값과 품이 많이 드니 혼례처럼 평생 한 번뿐인 자리의 옷에 몰렸다고 한다. 어머니가 딸에게 물려주거나 혼수로 지었고, 무늬가 얼마나 빽빽한지, 금실을 얼마나 썼는지가 그대로 집안 형편을 드러냈다.
두 혼례복은 맞추는 법이 정반대다. 붉은 옷은 바탕 전체가 무늬라 조각끼리 닮았다. 반복 무늬가 어려운 이유에서 다룬 대로, 무늬는 잠시 잊고 마네킹의 윤곽과 옷 주름의 그림자부터 따라간다. 검은 옷은 무늬가 테두리에 몰려 있으니 테두리 조각부터 모으고, 무늬 없는 검은 몸통은 나중에 채운다.
다섯 벌 모두 마네킹에 입힌 옷이라 윤곽이 분명하다. 드레스 두 점과 혼례복 두 점은 48~100조각 사이에서 고르고, 여러 벌이 겹친 세트는 옷마다 가를 여유가 생기도록 100조각으로 맞춘다.
바늘로 그린 지도
다섯 벌을 함께 보면 자수로 그린 지도가 펼쳐진다. 다마스쿠스 북쪽의 쿠테이페, 산악 지역 칼라문, 그리고 바다 건너 알바니아 중부 도시들의 혼례 풍습까지. 인도 남성 옷이나 수 놓은 견본의 이야기와 나란히 놓아도 마찬가지다. 바늘과 실은 옷 위에 고장과 형편과 경사를 놀랄 만큼 세밀하게 새겨 두었다. 옷을 입은 사람이 입을 열기 전에 옷이 먼저 그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말해 주던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