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화가 드타유와 여성 초상화가 드루에가 딱 한 번 다르게 그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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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도 없이 말 위에 가만히 앉은 병사 하나. 군복 고증으로 이름난 전쟁화가 드타유의 그림이다. 여성 초상으로 이름난 드루에에게도 여인이 아닌 소년을 그린 그림이 있다. 화가마다 “이 사람은 늘 이런 걸 그린다”는 인상이 붙어 있게 마련인데, 두 사람 모두 그 인상에서 살짝 비켜난 작품이 한 점씩 있다. 공교롭게도 두 그림은 이미 명화 속 동물 찾기에 “동물이 나오는 그림”으로 나란히 실렸었다. 이번에는 동물 말고, 화가가 평소 안 그리던 걸 그리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본다.
| 작품 | 화가 | 소재 |
|---|---|---|
| 말 위의 용기병 | 드타유 | 전투 없는 병사 |
| 샹피니 방어 | 드타유 | 대규모 전투 (대조용) |
| 검은 스패니얼과 소년 | 드루에 | 소년 초상 |
세로 24센티미터의 조용한 용기병
말 위의 용기병은 말갈기 장식 투구를 쓴 병사가 화면 한가운데 있는, 세로 24센티미터짜리 작은 패널화다. 뒤로 야영하는 병사들과 흐릿한 지평선이 보일 뿐 싸움은 없다. 에두아르 드타유는 메소니에의 제자로, 보불전쟁에 직접 나갔다 온 뒤 군인의 복장과 장비를 정확히 그리는 화가로 이름을 얻었다.
흑백 이미지라 색으로는 못 나누지만 명암이 뚜렷하다. 말의 검은 몸통, 병사의 밝은 얼굴과 투구, 흰 하늘 조각을 먼저 갈라 두고, 배경의 회색 조각은 지평선 높이를 기준으로 위아래를 나눈다. 세로로 긴 그림이라 48조각이 적당하다.
폭 2미터의 샹피니 방어와 견주면
이 작은 패널을 샹피니 방어 옆에 놓으면 차이가 확 드러난다. 폭이 2미터가 넘는 이 대작에서는 눈 덮인 마을의 프랑스 병사들이 프로이센군에게 총을 겨눈다. 보불전쟁 중 파리가 포위된 1870년 겨울, 프랑스군이 동쪽 샹피니에서 포위망을 뚫으려다 실패한 전투다. 드타유 자신이 싸운 전쟁이고, 뒤에 그가 드 뇌빌과 함께 만든 대형 파노라마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용기병은 이 대작을 위한 인물 연구였거나, 전투 없이도 팔리는 수집가용 소품이었을 것이다. 같은 화가라도 전쟁을 기록할 때와 꾸밀 때 화면의 크기와 밀도가 이만큼 다르다.
폭이 넓고 인물이 많아 조각 수 많은 퍼즐에 어울린다. 300조각에 처음 도전할 때 해 볼 만한 그림이다. 오른쪽 저택과 왼쪽 흰 벽을 양쪽 기둥 삼아 먼저 세우고, 병사들의 붉은 바지 조각을 모아 앞줄을 채운다. 위쪽의 누런 하늘은 연기의 밝기 차이로 맨 나중에 맞춘다.
드루에가 그린 단 한 명의 소년
검은 스패니얼과 소년에서는 은빛 곱슬머리에 레이스 깃을 두른 소년이 검은 스패니얼을 안고 정면을 본다. 타원형 초상이다. 프랑수아 위베르 드루에는 18세기 후반 프랑스 궁정에서 가장 인기 있던 초상화가였고 귀족 집안 아이들의 초상으로 특히 이름을 얻었지만, 그동안 소개한 그의 다른 작품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이 소년만 예외다.
아이를 어른의 축소판으로 그리지 않고 개나 장난감과 함께 있는 아이답게 그렸다는 게 그때로서는 새로웠다. 소년이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여성 초상의 격식을 내려놓고 아이의 자연스러운 몸짓을 담은 솜씨는 그의 다른 초상들과 나란히 놓고 볼 만하다.
퍼즐로는 비교적 친절한 그림이다. 얼굴, 레이스 깃, 개의 눈처럼 밝고 또렷한 조각을 중심으로 모으고, 코트의 살구색 면은 팔의 주름 방향을 따라 붙인다. 어두운 배경은 타원 테두리에 닿는 곡선 조각부터 처리하면 남는 조각이 줄어든다.
대표작 밖의 한 점
두 화가의 예외작을 나란히 놓으면 결론은 같다. 드타유는 싸움 없이도 병사를 그릴 줄 알았고, 드루에는 여성이 아니어도 아이의 자연스러움을 붙잡을 줄 알았다. 화가를 대표작 몇 점으로만 기억하면 그 사람이 실제로 해낼 수 있던 폭을 놓친다. 세 점이 우연히 “동물 등장작”으로 한 글에 묶였던 것도, 대표 이미지 밖의 그림들이 뜻밖의 방식으로 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음에 어느 화가의 이름을 들으면, 그 사람이 딱 한 번 다르게 그린 그림이 있을지 먼저 궁금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