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본 적 없는 강가를 그린 소상팔경과 안개 낀 조선 산수화
작성
기러기 떼가 모래톱으로 내려앉고, 안개 너머 어딘가에서 절의 저녁 종이 울린다. 조선 화가들이 즐겨 그린 이 강가는 그들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이다. 중국 남쪽 소상(瀟湘) 지방의 여덟 경치, 소상팔경이다. 한국 회화 분류에 이 주제를 그린 그림이 두 점 있고, 둘 다 비단에 먹만 써서 그렸다.
시와 그림으로만 전해진 경치
소상팔경은 중국 후난성 소상 지방의 여덟 경치를 말한다. 고려 말부터 조선 화가들이 가장 즐겨 그린 산수 주제였다고 한다. 화가들은 그곳을 직접 보고 그리지 않았다. 시와 그림으로 전해 내려온 이상적인 경치를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강가를 지어 올렸다.
그러니 이 그림을 퍼즐로 맞추는 일은 상상으로 지은 풍경을 다시 한 조각씩 짓는 일이기도 하다.
두 점 모두 소장처 정보에는 “한국”으로 분류되어 있다.
| 작품 | 연대 | 형태 | 크기 |
|---|---|---|---|
| 평사낙안 | 15세기 말~16세기 초 | 비단에 먹, 족자 | 126.4 × 48.9 cm |
| 연사모종과 동정추월 | 1450~1500년 무렵 | 비단에 먹, 족자 한 쌍 | 각 89.9 × 45.4 cm |
제목은 팔경의 이름에서 왔다. 여덟 장면마다 넉 자짜리 이름이 붙는데, 여기 있는 건 그중 세 장면이다. 모래톱에 기러기가 내려앉는 평사낙안(平沙落雁), 안개 낀 절에서 저녁 종이 울리는 연사모종(煙寺暮鐘), 동정호에 가을 달이 뜨는 동정추월(洞庭秋月).
안개로 지우고 먹으로 쌓고
두 그림을 묶는 건 안개다.
「평사낙안」은 위쪽 절반이 안개 속에 겹겹이 솟은 산이다. 아래로 내려오면 넓은 강과 모래톱이 펼쳐진다.
「연사모종」은 안개 속에 솟은 산과 그 아래 자리한 절을 그렸다.
먹의 짙고 옅음만으로 가까운 것은 진하게, 먼 것은 흐리게 그려 거리를 만든다. 「연사모종과 동정추월」처럼 안개로 먼 데를 지우고 바위를 짧은 붓질로 쌓아 올리는 방식은 15세기 안견파 산수의 특징으로 꼽힌다.
작가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연사모종과 동정추월」은 “전 안견(傳 安堅)“으로 다뤄진다. 안견은 세종 때 「몽유도원도」를 그린 조선 최고의 화가로 알려졌지만, 그의 이름이 붙은 그림은 많아도 확실한 작품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이 족자도 안견의 이름이 전할 뿐 그의 작품으로 확정된 건 아니다. 「평사낙안」은 작가 미상이고, 안견 화풍의 흐름 속에 있다는 설명만 붙어 있다.
진한 소나무와 한시 조각부터
흑백에 가까운 넓은 면이 많은 그림이다. 안개가 지운 자리는 조각이 거의 똑같아서 요령이 필요하다.
진한 곳을 먼저 잡는다. 「평사낙안」은 강가의 소나무와 작은 배, 모래톱의 윤곽이 가장 진하고, 「연사모종」은 아래쪽 절 지붕과 가까운 바위가 그렇다. 이 조각들이 뼈대가 된다. 「평사낙안」 오른쪽 위에는 한시가 적혀 있어서, 글씨가 든 조각은 위치를 단단히 못박아 준다. 획과 줄 방향만 봐도 위아래가 가려진다. 세월에 누렇게 바랜 비단도 가장자리와 가운데가 미묘하게 다를 수 있어서, 같은 안개 조각이라도 바탕이 조금 더 누런지를 살핀다. 안개 낀 흐린 조각은 맨 나중에, 진한 조각으로 세운 틀 안쪽으로 좁혀 가며 채운다. 단색 면이 넓은 그림 공략법과 같은 방식이다.
두 점 다 48조각이면 안개만 든 조각이 감당할 만큼만 나온다. 「연사모종과 동정추월」은 족자 한 쌍이라 화면이 둘이니 하나씩 푼다. 안개 앞에서 손이 멈추면 막힐 때의 요령대로 잠깐 옆 족자로 건너갔다 온다. 조선 그림을 맞추는 이야기는 조선시대 회화 퍼즐 가이드에서, 풍경 퍼즐 전반은 풍경화 퍼즐 고르는 법에서 이어진다.
그림에 없는 소리
여덟 경치의 이름에는 소리와 시간이 섞여 있다. 저녁 종소리, 가을 달, 내려앉는 기러기의 날갯짓. 그림 자체는 소리가 없는데 제목이 소리를 불러온다. 「연사모종」의 안개 속 절에서는 종이 울리는 듯하고, 「평사낙안」에서는 기러기 떼가 내려앉기 직전의 고요가 느껴진다.
마지막 조각을 끼우면 안개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안개는 붓으로 그린 게 아니다. 먹을 대지 않고 비워 둔 비단이 그림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래서 다 맞춘 뒤에도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