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화가에서 노인까지, 유럽 회화 마지막 네 점에 담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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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의자 앞의 젊은 화가, 안락의자에 몸을 묻은 백발 노인, 숲속에서 연인을 훔쳐보는 아이들, 손금을 봐 주는 척하는 점쟁이. 「유럽 회화」 부문에 마지막으로 남은 네 점이다. 화가도 시대도 겹치지 않는데, 나란히 놓으니 묘하게 이어진다. 사람이 태어나 늙어 가는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 작품 | 화가 | 연대 |
|---|---|---|
| 루이 펠릭스 아미엘 | 외젠 드베리아 | 1837 |
| 노인의 초상 | 프란시스코 도밍고 이 마르케스 | 1882 |
| 인생의 세 시기 | 도소 도시 | 1515년 무렵 |
| 손금 보는 여인이 있는 실내의 남녀 | 야코프 뒤크 | 1632~33년 무렵 |
화가가 그린 화가
루이 펠릭스 아미엘의 초상에서는 검은 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젊은 남자가 붉은 의자를 등지고 정면을 본다. 목에는 검은 스카프를 둘렀고, 얼굴에 부드러운 빛이 떨어진다.
아미엘은 파리에서 활동한 화가였다. 그를 그린 외젠 드베리아도 같은 세대의 낭만주의 화가로, 1827년 살롱에서 대작으로 이름을 알린 뒤 초상화를 여럿 남겼다. 형 아실 드베리아 역시 화가였다. 동료를 그린 그림이어서인지 옷차림은 소박하고 시선은 담담하다. 서로의 작업을 잘 아는 사이에서만 나올 법한 편안함이 있다.
얼굴, 흰 셔츠 깃, 붉은 의자가 색으로 또렷이 갈려서, 48조각으로 잘라 얼굴부터 맞추고 의자를 왼쪽에 세우면 나머지 자리가 금방 좁혀진다.
이름이 남지 않은 노인
노인의 초상에서는 어두운 방, 큰 안락의자에 백발 노인이 몸을 파묻듯 앉아 있다. 검은 옷 사이로 흰 셔츠가 살짝 보이고, 두 손은 무릎 위에 포갰으며, 얼굴은 왼쪽을 향한다. 세로 27센티미터의 작은 나무판에 거칠고 빠른 붓질이다.
프란시스코 도밍고 이 마르케스는 발렌시아 출신으로, 파리에서 작은 패널에 인물과 실내를 재빨리 그려 인기를 얻었다. 이 노인이 누구인지는 전하지 않는다. 그 익명성이 오히려 그림을 편하게 만든다. 주문받은 초상이었다면 갖췄을 격식이 없고, 화가 곁의 누군가를 스치듯 담은 습작 같은 친근함이 남았다.
같은 48조각이라도 이쪽은 검은 덩어리가 크다. 검은 옷과 어두운 배경은 비슷해 보여도 붓질의 광택이 달라서, 얼굴을 먼저 완성한 뒤 번들거리는 옷 조각과 탁한 배경 조각을 두 무더기로 나눠 두고 넓혀 간다.
아무도 뜻을 모르는 우의화
인생의 세 시기는 결이 전혀 다르다. 울창한 숲 사이로 바다와 하늘이 보이고, 왼쪽 그늘에 노인들이 앉아 있다. 가운데 덤불 뒤에서는 아이 둘이 몸을 숨긴 채 무언가를 엿보는데, 그 시선 끝에 젊은 남녀가 나란히 앉아 있다. 오른쪽 뒤로는 양 떼와 목자가 작게 보인다.
아이와 연인과 노인이 한 풍경에 모여 있으니 “인생의 세 시기”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정확한 뜻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도소 도시는 페라라 공작의 궁정 화가로, 베네치아풍 색채와 시적인 풍경, 알 수 없는 우의를 즐겨 그렸다. 인물보다 숲이 화면을 차지하는 구성은 당시 이탈리아 그림에서 드물었다. 아이들이 몰래 보는 대상이 연인이고 그 옆에 노인들이 있다는 것. 알 수 있는 건 그 정도라 이야기를 온전히 맞춰 보기는 어렵다.
조각을 맞추는 일도 만만치 않다. 초록과 파랑이 화면 대부분을 덮고 있어서, 100조각으로 하면 비슷한 숲 조각이 한참 쌓인다. 덤불 속 아이들과 왼쪽 노인들처럼 사람이 든 조각을 먼저 찾아 자리를 잡고, 나무와 하늘은 맨 나중에 둔다.
손금 뒤에 숨은 소매치기
손금 보는 여인이 있는 실내의 남녀는 타원형 화면 안에 벽난로 불이 타는 방을 담았다. 흰 주름깃에 검은 옷, 초록 치마를 입은 여인이 손을 내밀고 앉아 있고, 무늬 있는 숄을 두른 나이 든 여인이 그 손을 들여다본다. 뒤에는 깃털 모자를 쓴 남자가 서 있다.
집시 점쟁이가 손금을 봐 주는 척하며 지갑을 훔치는 장면은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에 자주 나온 소재다. 거슬러 올라가면 카라바조의 「점쟁이」가 있다. 야코프 뒤크는 위트레흐트에서 활동하며 병사와 여인이 있는 실내 장면을 즐겨 그렸다. 타원형 화면은 당시 수집가들이 특히 좋아한 형식이었고, 퍼즐에서도 이 타원 틀부터 잡으면 안쪽 인물들의 배치가 저절로 정리된다. 인물과 소품이 많아 이쪽도 100조각이 잘 어울린다.
네 점을 한 사람의 일생처럼
억지로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아도 흐름이 보인다. 화가가 동료 화가를 담담하게 기록하고, 이름 없는 노인은 삶의 끝자락에 조용히 앉아 있다. 아이와 연인과 노인은 한 풍경 안에서 서로를 지켜본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손금을 핑계로 남의 지갑을 노린다. 초상과 우의화와 풍속화, 장르는 제각각인데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의 여러 단면이다.
유럽 회화는 이 네 점으로 일단 마무리된다. 드로스트와 뒤크뢰의 두 자화상이나 남의 화풍을 흉내 낸 디트리히에 비하면 이름값에서는 한참 밀리는 그림들이다. 그래도 마지막 자리에는 잘 어울린다. 붉은 의자 앞의 젊은 화가로 시작해, 안락의자에 파묻힌 노인과 덤불 뒤의 아이들을 지나, 남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늙은 점쟁이에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