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도 와토도 될 수 있었던 화가 디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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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화풍을 흉내 낸 화가라고 하면 보통 위조범이 먼저 떠오른다. 옛것인 척하는 그림의 주인공도 그랬다. 그런데 흉내를 숨기기는커녕 간판으로 내건 화가도 있었다. 18세기 독일의 궁정 화가 크리스티안 빌헬름 에른스트 디트리히다.
| 작품 | 연대 | 크기 | 무엇을 흉내 냈나 |
|---|---|---|---|
| 병자를 고치는 그리스도 | 1742 | 89.2 × 105.1 cm | 렘브란트의 판화 |
| 목자들의 경배 | 1760년대 | 54.9 × 73 cm | 렘브란트풍 야경 |
| 들킨 밀회, 또는 발각된 부정 | 미상 | 73 × 72.7 cm | 와토풍 연회 그림 |
디트리히는 바이마르에서 태어나 1774년 드레스덴에서 죽었다. 세 점 모두 캔버스에 그린 유화다.
백 굴덴 판화를 캔버스로
「병자를 고치는 그리스도」에서는 어두운 아치 아래 수십 명이 모여 있고, 한가운데 그리스도가 손을 들어 병자 쪽을 향한다. 구성은 렘브란트의 유명한 판화 「병자를 고치는 그리스도」, 이른바 백 굴덴 판화를 그대로 따랐다.
드레스덴 궁정 화가였던 디트리히는 렘브란트와 네덜란드 화가들의 양식을 마음대로 부리는 솜씨로 유럽에 이름이 났다. 흉내가 흠이 되기는커녕 명성의 밑천이 되었다.
등불 하나로 밝힌 헛간
「목자들의 경배」는 나무 들보가 얽힌 어두운 헛간에서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둘러싼 장면이다. 등불 하나로 화면 전체를 밝히는 방식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즐겨 쓰던 야경 기법이다. 목자들의 경배는 밤에 벌어진 일이라 이런 야경으로 자주 그려졌고, 디트리히는 그 전통을 18세기 중반 드레스덴에서 다시 꺼냈다. 거친 목재, 등불 빛, 소박한 인물들까지 모두 렘브란트의 판화에서 배운 것들이다.
한 화가에게서 렘브란트의 그림자를 두 번 보게 된다. 한 번은 병자를 고치는 낮의 장면에서, 또 한 번은 목자들이 모여드는 밤의 장면에서. 백여 년 전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화풍이 18세기 독일 궁정에서 그렇게 되살아났다.
같은 손으로 그린 로코코
「들킨 밀회, 또는 발각된 부정」은 분위기가 딴판이다. 큰 나무 아래서 몰래 만나던 남녀가 들키는 순간을 아기 천사와 광대가 지켜본다. 와토와 그 뒤를 이은 화가들이 유행시킨 “연회 그림” 형식을 빌려 왔다.
앙투안 와토는 프랑스 로코코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귀족들의 우아한 야외 모임을 그린 “페트 갈랑트(fête galante, 연회 그림)“로 이름났다. 렘브란트풍 종교화를 그리던 손이 이번에는 와토의 경쾌한 프랑스식 정경을 따라 그렸다. 아기 천사와 광대는 연극처럼 꾸민 장면이라는 표시다. 검은 옷의 여인이 누구인지는 보는 사람이 정할 몫으로 남아 있다.
위조범과 디트리히의 차이
옛것인 척하는 그림의 위조범은 자기 작품을 다른 시대, 다른 사람의 것으로 속여 팔려 했다. 디트리히는 자기 이름으로 그림을 팔았다. 렘브란트나 와토를 따라 그렸다는 사실도 감추지 않았고, 그게 곧 그의 재주로 통했다.
18세기 유럽 수집가들에게 렘브란트나 와토의 진품은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디트리히 같은 화가는 그들이 원하는 화풍을 주문대로 그려 주었다. 렘브란트풍 종교화가 필요하면 렘브란트풍으로, 와토풍 연회 그림이 필요하면 와토풍으로. 한 사람의 손에서 이토록 다른 그림이 나왔다는 사실이 그 시대 미술 시장의 모습을 보여 준다.
어두운 두 점과 밝은 한 점
화풍이 다르니 맞추는 법도 갈린다. 렘브란트풍인 「병자를 고치는 그리스도」와 「목자들의 경배」는 어둠 속에 밝은 부분이 떠 있는 구도다. 가장 밝은 조각, 곧 그리스도의 흰옷과 등불 언저리부터 맞추고, 어두운 조각은 드가와 로트렉 소묘에서 다룬 밀도 구분법으로 가장자리부터 채워 들어간다. 두 점 모두 인물이 많아 100조각이 어울리는데, 수십 명이 모인 「병자를 고치는 그리스도」는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한 무리씩 끝내야 덜 지친다.
「들킨 밀회」는 노란 드레스, 검은 드레스, 파란 하늘이 또렷이 갈려서 48~100조각 어느 쪽이든 색 구역별로 나누기 좋다. 작지만 모양이 분명한 아기 천사와 광대를 먼저 앉혀 두면 나무 아래 남녀의 자리가 따라 정해진다.
디트리히의 그림 앞에서는 묘한 감탄이 든다. 렘브란트도 와토도 아닌데 렘브란트 같고 와토 같다. 남의 눈으로 보는 법을 이렇게 여러 벌 갖고 있던 사람이라면, 정작 자기 눈은 어땠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