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이 벗겨진 중세 조각 네 점에서 사라진 색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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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중세 조각 설명문을 읽다 보면 같은 문구가 자꾸 나온다. “원래는 채색과 금박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건 흰 돌이나 맨나무 색인데 말이다. 「중세 미술」 가운데 그 사라진 색의 흔적만 남은 조각 네 점을 모았다.
| 작품 | 재료 | 크기 | 시대 |
|---|---|---|---|
| 주교의 머리 | 석회암, 금박 흔적 | 3.1 × 2.7cm | 15세기 프랑스 |
| 성녀 바르바라 | 캉 석, 원래 채색·금박 | 141.9cm | 16세기 프랑스 |
| 네 성인의 제단 | 유화, 금박, 나무 | 125.1cm | 15세기 후반 베네치아 |
| 리넨폴드 판 | 참나무 | 51.8cm | 16세기 유럽 |
손톱만 한 주교
「주교의 머리」는 실제 크기가 3센티미터밖에 안 된다. 주교관과 소용돌이 지팡이(크로지어)가 주교의 표식이니, 이 작은 머리만 보고도 원래 주교 조각상의 일부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몸은 없어지고 머리만 남았다. 15세기 프랑스에서는 이만한 성인상을 여러 개 모아 작은 제단이나 성물함을 꾸몄고, 마무리는 채색과 금박이었다. 표면에 희미하게 남은 금박이 한때 이 작은 얼굴이 반짝였다고 알려 준다.
회색 배경과 밝은 돌이 또렷이 갈려서, 24조각으로 맞추면 주교관의 뾰족한 꼭대기와 지팡이의 소용돌이, 아래 붉은 받침만 자리 잡아도 거의 끝난다. 이만한 크기의 중세 물건은 중세의 작은 보물들에 더 모여 있다.
탑을 든 성녀의 색 잃은 옷
「성녀 바르바라」는 높이 1.4미터의 큰 석상이다. 전설 속 바르바라는 아버지가 탑에 가둔 뒤 순교했고, 그래서 탑이 그녀의 표식이 되었다. 번개와 갑작스러운 죽음에서 지켜 준다고 여겨져 광부와 포병의 수호성인으로도 모셔졌다.
이 조각도 처음에는 화려했다. 캉 지방의 흰 석회암은 깎기 좋아서 프랑스 북부 성당 조각에 널리 쓰였고, 다 깎은 뒤에는 채색과 금박을 입혔다. 표면에 남은 희미한 채색 흔적을 보면, 지금의 흰 돌이 원래 모습의 일부일 뿐이라는 짐작이 든다.
검은 배경에 흰 석상이라 윤곽은 금방 두르는데, 흰 옷 주름에서 손이 느려진다. 주름 조각마다 색이 거의 같아서 그림자가 어느 쪽으로 지는지를 보고 이어야 한다. 얼굴과 탑 모형, 늘어진 머리카락을 먼저 붙여 두고 세로로 긴 몸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48조각이라도 주름 조각이 한꺼번에 남지 않는다.
문을 열면 금빛 성모
「네 성인의 제단」은 채색이 그대로 남은 드문 예다. 양쪽 문을 연 나무 제단 안에 금빛 성모상이 서 있고, 문 안쪽에는 네 성인이 그려져 있다.
부유한 집의 침실이나 개인 예배당에 두고 문을 여닫으며 기도하던 작은 제단이다. 앞의 두 조각이 색을 잃은 지금, 금박과 유화가 원래 어떤 인상을 주었을지 이 제단을 보며 가늠해 볼 수 있다. 조각과 회화, 건축 장식이 물건 하나에 다 들어 있다.
100조각으로 잘라도 이 제단은 수월하다. 직선 모서리와 문의 칸 나누기가 저절로 틀이 되고, 가운데 금빛 성모상과 닫집이 자리를 잡으면 네 성인은 옷 색이 저마다 달라 문 안쪽 자리가 금방 정해진다. 금박이 온전히 남은 그림은 금박 패널화 퍼즐 가이드에서 더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색이 없던 판
「리넨폴드 판」은 종류가 다르다. 애초에 칠하지 않은 참나무 판에, 접힌 천 모양의 세로 홈을 새겼다.
“리넨폴드(접힌 아마천)“라고 부르는 이 무늬는 15~16세기 북유럽에서 궤와 문, 벽널을 꾸미는 데 널리 쓰였다. 천을 접어 세운 모양을 나무에 옮긴 것인데, 만들기 쉬우면서도 빛에 따라 그림자가 바뀌어서 벽 전체를 덮으면 풍성해 보인다. 색 없이 빛과 그림자만으로 장식을 했고, 나뭇결 하나로 버틴 판이다. 이런 판을 붙이던 궤나 문처럼 쓰임새 있는 중세 물건은 중세의 실용품들에 더 있다.
네 점 가운데 퍼즐로는 이 판이 제일 어렵다. 온통 참나무 갈색이라, 위아래 끝의 둥근 마감 조각을 빼면 자리를 알려 주는 건 세로 홈이 만드는 그림자 선과 나뭇결의 미세한 차이뿐이다. 24조각으로 시작해도 충분히 애를 먹는다.
소박한 중세라는 착시
네 점을 함께 보고 나면 중세 조각을 보는 눈이 바뀐다. 미술관의 흰 돌과 갈색 나무는 대개 세월이 채색을 벗겨 낸 결과다. 「슬퍼하는 성모」처럼 처음부터 칠하지 않은 조각도 있지만, 여기 모은 네 점 가운데 세 점은 원래 화려한 색을 입고 있었다. 우리가 떠올리는 “소박한 중세”는 어쩌면 시간이 만든 착시일지 모른다.
색이 사라진 조각을 오래 보고 있으면 지금 없는 것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주교의 얼굴에 남은 금빛 한 점, 바르바라의 옷자락에 스민 희미한 채색. 그 작은 흔적들이 원래 모습 쪽을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