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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의 대화부터 숲속 동화까지, 종이에 붙잡아 둔 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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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앞에 앉은 여인, 뺨을 괸 여인, 팔짱 낀 남자, 그리고 발치의 작은 개 한 마리. 회색 담채로 쓱쓱 그린 이 방 안 풍경은 종이 위의 스케치다. 미술관에는 큰 유화만 남지 않는다. 종이에 잉크나 수채로 빠르게 적어 둔 순간들도 남는다. 여기 모은 네 점은 화가도 시대도 제각각인데, 하나같이 누군가의 짧은 순간을 붙잡아 두었다. 응접실의 대화, 거리의 유행, 방 안의 고요, 숲속 동화의 한 장면.

작품화가연대재료
대화 그림루이 레오폴 부알리1789~93펜, 회색 담채
꽃다발에르네스트 앙주 뒤에즈미상수채
책 읽는 여인프랑수아 봉뱅1846~47수채, 구아슈
처녀와 큐피드와 개구리윌리엄 헨리 로메인 워커미상잉크, 수채

혁명기 파리의 응접실

대화 그림이 그림을 퍼즐로 맞춰보기 → 쉬움은 약 5분

맨 앞에서 말한 그림이 대화 그림이다. 왼쪽에 피아노 앞의 여인, 그 옆에 손으로 뺨을 괸 여인, 오른쪽에 팔짱을 끼고 선 남자가 있다.

“대화 그림”은 가족이나 친구들의 모임을 자연스러운 한때로 담는 형식을 가리킨다. 영국에서 시작해 프랑스로 건너왔다. 루이 레오폴 부알리는 프랑스 혁명기와 나폴레옹 시대 파리 시민의 일상을 작은 화면에 즐겨 담은 화가다. 이 드로잉은 완성작보다는 유화를 그리기 전에 구도를 잡아 본 습작으로 보인다. 누구를 어디에 앉히고 시선을 어느 쪽으로 보낼지, 종이 위에서 먼저 시험해 본 흔적이다.

회색 담채 한 가지라 맞출 때 기댈 건 인물 윤곽과 옷 주름의 진한 선뿐이다. 발치의 작은 개는 조각 한두 개에 다 들어가 버리니, 잃어버리기 전에 먼저 찾아 둔다.

1880년대 파리의 유행, 남색 드레스와 분홍 꽃다발

꽃다발

꽃다발에서는 남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흰 종이 위에 커다란 분홍 꽃다발을 안고 서 있다. 머리에는 꽃과 리본을 단 작은 모자, 손에는 갈색 장갑, 치마는 뒤로 부풀렸다. 배경이 거의 비어 있어 인물만 또렷하다.

에르네스트 앙주 뒤에즈는 파리 사교계 여성의 초상과 유행을 그려 수채화와 잡지 삽화로 이름을 얻었다. 뒤로 부풀린 치마와 작은 꽃 모자는 1880년대 유행이라, 제작 연도가 남아 있지 않아도 대략의 시기는 짐작이 간다. 분홍 꽃다발이 남색 옷과 맞서며 화면의 중심을 잡는다. 그 둘레는 거의 다 흰 종이라, 맞추다 보면 드레스와 꽃다발은 금세 끝나고 여백 조각만 수북이 남는다. 그 흰 조각들은 가장자리부터 안쪽으로 채워 간다.

17세기 실내화를 옮겨 그린 19세기 수채화

책 읽는 여인

책 읽는 여인은 제목에 이미 “~를 따라(after)“가 붙어 있다. 원작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얀선스 엘링가의 유화로 지금 뮌헨의 미술관에 있고, 19세기 파리 화가 프랑수아 봉뱅이 그 원작을 보고 이 수채화를 옮겨 그렸다.

납 창살 창문으로 빛이 드는 방에서 붉은 옷에 흰 두건을 쓴 여인이 등을 돌린 채 책을 읽는다. 바닥에는 벗어 둔 붉은 슬리퍼 한 켤레가 놓였다. 봉뱅은 네덜란드 실내화를 존경했고 조용한 일상 장면을 즐겨 그렸다. 슬리퍼와 뒷모습만으로도 페르메이르 시대 네덜란드 실내화의 고요함이 200년을 건너 고스란히 전해진다.

맞출 때 색이 분명한 조각은 창문 격자와 붉은 슬리퍼, 붉은 의자 정도로 몇 개 없다. 나머지 어두운 방은 명암이 조금씩 다른 것을 보고 갈라야 한다.

런던 건축가가 여가에 그린 동화

처녀와 큐피드와 개구리

처녀와 큐피드와 개구리는 어두운 숲 한가운데서 날개 달린 아기 큐피드가 활을 들고 웅덩이 속 개구리를 겨누는 장면이다. 오른쪽 덤불 사이로 긴 금발의 여인이 얼굴을 내밀고 이를 지켜본다. 갈색과 초록 잉크, 수채로 나뭇가지 하나하나를 촘촘하게 그렸다.

그린 사람은 윌리엄 헨리 로메인 워커. 화가가 본업이 아니었고 런던에서 활동한 건축가였다. 이런 동화풍 그림은 여가 시간에 그렸다. 개구리 왕자나 요정 이야기가 유행하던 빅토리아 시대 말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는데, 정작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그림인지는 설명이 남아 있지 않다. 큐피드는 왜 개구리를 겨누고 처녀는 왜 숨어서 보는지, 해석은 보는 사람에게 맡겨져 있다.

네 점 가운데 손이 가장 오래 머무는 건 이 숲이다. 잔가지가 빽빽해서 어느 조각이나 갈색과 초록 선이 엉켜 있다. 밝은 건 큐피드의 날개와 화살, 덤불 사이 여인의 금발 정도라, 그 몇 조각이 숲 한가운데에 섬처럼 먼저 놓인다. 네 점 다 원본 화면이 크지 않아서 24조각이나 48조각 정도로 맞추게 된다.

유화가 되지 못한, 혹은 될 필요가 없었던 그림

네 점을 한데 놓으면 종이라는 매체가 어디에 잘 맞는지가 보인다. 유화로 옮기기 전의 생각(부알리), 스쳐 가는 유행의 기록(뒤에즈), 다른 시대 그림에 대한 존경(봉뱅), 직업과 상관없는 개인적인 즐거움(워커). 완성된 유화를 결과라고 한다면, 이 그림들은 그 결과로 가는 과정이거나 애초에 결과를 바라지 않은 순간의 기록이다. 드가와 로트렉의 소묘나 바르비종 화가들의 스케치도 그랬다.

미술관에서는 큰 유화 앞에서 발을 멈추게 된다. 그래도 부알리가 피아노 앞 여인의 자리를 고르던 회색 붓질이나, 워커가 여가에 한 가닥씩 그어 넣은 잔가지는 종이 위에서만 이렇게 가까이 보인다.

이 글에서 소개한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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