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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아와 천사를 두 가지 값으로 그린 네리 디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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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달린 천사가 소년의 손을 잡고 길을 간다. 대천사 라파엘과 소년 토비아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에는 이 장면이 두 가지 크기로 있다. 소장처 정보를 보면 둘 다 15세기 피렌체의 화가 네리 디 비치(1419~1491)가 나무에 템페라와 금으로 그렸고, 둘 다 1975년에 로버트 리먼 컬렉션으로 들어왔다.

물고기를 잡은 소년

두 그림의 이야기는 같다. 구약외경 토비트서에서 소년 토비아는 천사 라파엘의 인도를 받아 먼 길을 떠나고, 물고기를 잡아 그 쓸개로 아버지의 눈을 고친다.

이 그림이 어디에 쓰였는지가 더 재미있다. 15세기 피렌체에서는 아들을 먼 곳에 보내는 집안이 이 그림을 주문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유학이나 긴 여행을 떠나는 자식을 위해 부모가 걸어 두는 부적 같은 그림이었다.

큰 판과 작은 판

작품크기특징
큰 판본30.2 × 23.2 cm붉은 옷과 흰 망토, 개 없음
작은 판본19.7 × 14.6 cm분홍 옷, 개 포함, 별빛 배경

나란히 놓으면 세부가 꽤 다르다.

큰 판본이 그림을 퍼즐로 맞춰보기 → 쉬움은 약 5분

큰 판에서는 붉은 옷에 흰 망토를 걸친 천사가, 푸른 옷에 붉은 망토를 두른 소년의 손을 잡고 걷는다.

작은 판본

작은 판의 천사는 분홍 옷에 붉은 날개를 달았고, 소년은 흰 옷에 줄무늬 소매 차림이다. 옷 색도 날개 색도 배경도 다 다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개다. 작은 판에는 뒤따라오는 작은 개가 있는데 큰 판에는 없다. 토비트서에서 토비아를 따라나선 그 강아지다. 원래 이야기에 있는 개를 화가는 한 판에는 넣고 다른 판에서는 뺐다.

왜 같은 그림을 두 번 그렸을까

네리 디 비치는 피렌체에서 인기 있는 주제를 크기와 값을 달리해 여러 점 만들어 팔았다. 작은 판은 형편이 조금 덜 넉넉한 주문자를 위한 것이었을 수 있다.

요즘 눈으로 보면 낯선 일도 아니다. 잘 팔리는 물건을 여러 가격대로 내놓는 것과 비슷하다. 네리 디 비치는 피렌체에서 활발하게 일한 공방 화가였고, 같은 밑그림이나 구도를 되풀이해 쓰면서 주문자의 예산에 따라 크기와 금박의 양을 조절했을 가능성이 있다. 큰 판이 더 크고 금박 액자도 더 화려하다는 점이 그 짐작에 힘을 보탠다.

성인 한 사람을 세 번 그린 베르나르디노 초상도 같은 컬렉션에 있다. 네리 디 비치의 토비아는 그보다 규모가 작지만 같은 원리를 보여 준다. 인기 있는 주제는 한 번 그리고 끝나지 않았다.

맞잡은 손부터

두 그림 모두 인물이 화면 가운데에 있고 배경은 비교적 단순하다. 천사와 소년이 맞잡은 손은 두 인물을 잇는 조각이라, 이걸 먼저 찾으면 화면의 중심이 선다. 큰 판은 붉은 옷과 푸른 옷, 작은 판은 분홍 옷과 흰 옷으로 색이 뚜렷하게 갈리니 색깔별로 나눠 두면 빠르다. 소년 곁이나 발치에 있는 물고기는 작아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이야기의 열쇠가 되는 소재이니 눈여겨 찾아보자.

배경은 그림마다 다르게 다룬다. 큰 판은 언덕과 강, 마을이 펼쳐진 풍경이라 풍경화 퍼즐 고르는 법의 요령이 통한다. 작은 판은 어두운 바탕에 금색 별점이 흩어져 있어서 금박 패널화 퍼즐 가이드에서 이야기한 방식이 더 잘 맞는다. 둘 다 작은 그림이라 24조각이나 48조각이 알맞다. 나란히 풀어 보면 같은 주제를 두 번 다르게 그린 차이가 손끝에 느껴진다.

같은 약속을 전하는 두 그림

두 그림을 함께 보면 15세기 피렌체의 어느 집안 풍경이 떠오른다. 아들을 먼 곳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가 있고, 그들은 형편에 맞춰 큰 그림이나 작은 그림을 주문했다. 그림의 크기는 달라도 천사와 소년이 전하는 약속은 같다. 길을 떠난 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화가의 공방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된 장면이지만, 그림을 받아 든 집마다 기다리는 아들은 한 사람씩이었다.

이 글에서 소개한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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