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 상자 카소네에 왜 루크레티아의 비극을 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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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시집갈 때 들고 가는 혼수 상자에, 능욕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인의 이야기를 그렸다. 지금 보면 고개가 갸웃해지는 조합이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루크레티아의 능욕」과 「루크레티아의 장례」, 두 패널이 그렇다.
혼수를 담던 상자, 카소네
카소네(cassone)는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신부가 혼수를 담아 가던 나무 상자다. 상자 앞면은 대개 그림으로 꾸몄는데, 이 두 패널이 그 앞면이다. 가로는 70센티미터 안팎으로 길고 세로는 40센티미터 남짓으로 낮다. 상자 앞판의 비율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소장처 정보에는 두 패널 모두 나무에 템페라와 금으로 그린 그림으로, “이탈리아, 피렌체, 15세기 말~16세기 초에 활동”한 화가의 작품으로 올라 있다. 이름은 남지 않았다. 미술사가들은 이 화가를 “마라디의 화가”라고 부르고, 이런 상자 그림을 전문으로 그리던 사람이었다고 본다.
한 여인의 죽음이 왕정을 무너뜨리다
로마의 귀부인 루크레티아는 왕자에게 능욕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죽음에 분노한 시민들이 왕정을 무너뜨렸다. 짧은 사건이지만, 르네상스 피렌체에서는 공화정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두 패널은 이 이야기의 앞과 뒤를 나눠 맡았다.
「루크레티아의 능욕」의 배경은 분홍 벽돌 궁전이다. 왼쪽에는 말 탄 병사들과 계단이 있고, 가운데 문 안에 여인이 서 있으며, 오른쪽에는 흰 말을 탄 남자와 병사들이 있다. 위쪽 창에도 작은 인물들이 보인다. 사건 자체는 그리지 않았다. 궁전이라는 무대와 그 안팎에 놓인 사람들로 이야기를 짐작하게 한다.
「루크레티아의 장례」의 왼쪽에는 흰 침대에 누운 여인과 그 둘레에 모인 사람들이 있다. 오른쪽, 기둥이 늘어선 신전에서는 남자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브루투스가 시민들에게 왕정을 무너뜨리자고 호소하는 순간으로 짐작된다. 한 사람의 죽음이 정치적 사건으로 번지는 자리가 이 패널에 있다.
신부에게 왜 이 이야기를
두 패널을 나란히 붙이면 혼수 상자 하나의 앞면이 된다. 요즘 감각으로는 결혼 예물에 어울리는 밝은 주제가 못 된다. 그런데 르네상스 피렌체의 카소네 그림은 신부에게 주는 본보기이기도 했다. 아내의 정절과 시민의 용기를 함께 가르치려 했다고 한다.
루크레티아는 정절을 지키려고 목숨을 던진 여성의 상징이었다. 그 이야기가 불러온 결말, 곧 왕정의 몰락과 공화정의 시작은 피렌체 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던 자기 역사이기도 했다. 신부는 이 상자를 들고 시집에 가서 그 이야기를 날마다 보며 살았을 것이다.
이름 없이 상자 그림만 그린 화가
“마라디의 화가”는 진짜 이름이 아니다. 미술사가들이 비슷한 화풍의 그림을 한데 묶어 부르는 관습적인 이름이고, 마라디는 피렌체 근교의 지명이다.
카소네 그림은 당시 회화 시장에서 따로 한 갈래를 이뤘다. 제단화나 초상화와 달리 가구의 일부였고, 그래서 전문 공방에서 여러 점씩 만들어 내는 일이 많았다. 이름이 남지 않은 까닭도 아마 거기 있지 않을까.
벽돌 줄과 기둥으로 칸 나누기
두 패널 모두 가로로 아주 긴 화면을 건물이 나눈다. 「능욕」에서는 분홍 벽돌 궁전의 창과 문틀이, 「장례」에서는 오른쪽 신전의 기둥이 화면을 일정하게 끊어 준다. 이런 직선 조각부터 맞추면 화면이 몇 구역으로 정리된다.
분홍 벽돌은 가로줄이 고른 간격으로 이어지니 그 줄의 높이로 위아래를 가늠한다. 인물은 작게 여럿 흩어져 있어서, 옷 색을 미리보기와 견주며 하나씩 자리를 찾아야 한다. 위쪽 푸른 하늘은 넓고 단조로우니 다른 데를 다 맞춘 뒤 마지막에 채운다. 가로로 긴 그림이라 격자가 납작하게 나오고, 두 점 모두 100조각이 알맞다.
따로 보면 두 장, 붙이면 한 이야기
이 두 패널은 하나씩 보면 각각의 그림이지만, 나란히 놓으면 한 편의 이야기가 된다. 금박 바탕에 템페라로 그린 같은 시대의 다른 그림은 금박 바탕의 성인 그림들에서 볼 수 있다. 같은 컬렉션에서 한 성인을 세 번 그린 베르나르디노 초상과 함께 보면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폭이 짐작된다. 문학과 신화에서 나온 그림을 읽는 방법은 책과 신화에서 나온 그림에서 더 다뤘다.
상자는 사라지고 앞판만 남아 미술관 벽에 걸렸다. 날마다 그 이야기를 보며 살았을 신부가 이 그림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봤을지는 아무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