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옷이라 불린 19세기 스페인 투우사 정장과 망토 네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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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 비단 위로 금실이 두껍게 덮여 있고, 어깨에서 바지 옆선까지 금빛이 흘러내린다. 그림도 조각도 아닌 옷이 퍼즐이 된 경우다. 「유럽 조각·장식 미술」 부문에 투우사 정장 세 벌과 망토 한 점이 있는데, 넷 다 19세기 스페인 투우사가 입던 옷이다.
옷으로 퍼즐을 한다니 낯설게 들리지만, 수 놓은 견본의 이야기에서 천 위의 자수를 맞춰 본 사람이라면 감이 온다. 해 보면 꽤 재미있다. 화면이 금실과 구슬 무늬로 빽빽해서, 조각 하나하나가 반짝이는 무늬 견본 같다.
| 작품 | 만든 이 | 연대 | 재료 |
|---|---|---|---|
| 투우사 정장 | J. 우리아르테 | 19세기 4사분기 | 비단, 금속, 금속실, 유리, 아마 |
| 투우사 정장 | 작가 미상 | 19세기 4사분기 | 비단, 금속, 유리 |
| 투우사 재킷 | 작가 미상 | 19세기 | 비단, 금속실, 유리, 면 |
| 투우사 망토 | 알레한드로 벨라스코 | 19세기 4사분기 | 비단, 금속, 유리, 면 |
“4사분기”는 한 세기의 마지막 4분의 1, 대략 1875년부터 1900년 사이를 말한다. 재료란의 “유리”는 구슬을 가리키는 듯하다. 소장처 정보에 만든 사람의 이름이 남은 건 우리아르테와 벨라스코, 두 점뿐이다.
햇빛을 받으려고 지은 옷
투우사 정장을 스페인어로 트라헤 데 루세스(traje de luces), “빛의 옷”이라고 부른다. 금실과 구슬이 투우장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데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이 옷의 성격을 잘 말해 준다. 몸을 지키기보다 보여 주려고 지은 옷이다. 짧은 재킷과 몸에 달라붙는 무릎 바지는 소 앞에서 재빨리 움직이기 좋은 모양이다. 어깨의 두툼한 장식판은 화려하기도 하지만 뿔에서 어깨를 막아 주는 구실도 했다. 바지 옆선과 무릎 아래 달린 술은 걸을 때마다 흔들리며 눈길을 끈다.
그렇다고 안전을 위해 고안된 옷으로 보기는 어렵다. 형식이 굳어진 예복에 더 가깝다. 몸을 얼마나 지켜 주느냐보다 관중 앞에서 어떻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했다.
진홍, 연두, 미색, 자주
같은 옷이라도 네 점을 나란히 놓으면 색으로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냈다는 게 보인다.
J. 우리아르테의 정장은 진홍색 비단을 금실로 두껍게 덮었다. 어깨와 가슴, 바지 옆선이 온통 금빛이다.
연둣빛 정장은 연한 초록 비단에 금실로 수를 놓고 술을 달았다. 투우사 옷으로는 흔치 않은 색이었다고 한다.
투우사 재킷은 미색 비단에 파란 새와 꽃을 수놓았다. 새와 꽃을 바탕에 두는 건 19세기 초의 취향이었고, 시대가 내려올수록 금실 자수가 주인공이 된다.
투우사 망토는 자줏빛 비단에 금실 자수 띠를 두른 행진용 망토다. 경기에 앞서 입장 행진을 할 때 걸쳤다.
이 시대 구분을 따르면, 네 점을 꽃무늬 시절에서 금실 시절로 넘어가는 흐름의 표본으로 읽을 수도 있다. 물론 네 점만 보고 시대의 변화를 단정하기엔 이르다.
실루엣부터 세우기
옷 퍼즐은 무늬 단위가 작고 되풀이된다. 이슬람 미술의 의복과 무늬에서 겪은 반복 무늬 문제가 여기서도 그대로 생긴다. 금실 자수가 화면 전체에 촘촘히 퍼져 있어서 색만 보고 조각을 나누면 다 비슷해 보인다.
다행히 마네킹에 입힌 옷이라 윤곽은 뚜렷하다. 어깨 장식판, 소매, 바지 옆선 같은 큰 구조부터 맞추면 옷의 실루엣이 먼저 선다. 그다음에는 바지 무릎 아래의 술이나 앞섶의 구슬 줄처럼 조각 경계에서 뚝 끊기는 것을 찾아 양쪽을 잇는다. 배경은 대개 단색이라 맨 뒤로 미루고, 옷을 다 맞춘 뒤 단색 배경 공략법대로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채워 들어간다.
금실 자수가 촘촘한 정장은 100조각을 넘기는 순간 금빛 조각이 다 똑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48조각쯤에서 멈추면 어깨 장식판이나 술이 한 조각 안에 들어와 알아보기 쉽다. 투우사 재킷은 파란 새와 꽃 덕에 색이 다양해서 24조각으로 시작해도 좋다.
흑백의 판화, 금빛의 옷
투우를 그린 판화도 있다. 고야의 투우 판화는 경기장의 움직임과 명암을 검은 선으로만 붙잡았다. 투우사의 옷은 그 반대편에서 같은 세계를 색과 금빛으로 보여 준다. 한 투우 문화가 종이 위에는 흑백의 긴장으로, 비단 위에는 금실의 번쩍임으로 남았다.
투우장 햇빛 아래서 번쩍였을 금실은 이제 미술관 조명 아래 있지만, 확대해서 한 조각씩 맞추다 보면 실 한 올 한 올이 빛을 받아 내는 방식이 여전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