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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가 살아서 내놓지 않은 감옥 판화와 잔혹한 구경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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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의 쇠사슬에 두 팔이 묶인 죄수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옆 판화에서는 검은 소가 눈먼 기타 연주자를 뿔로 들어 올린다. 고야는 이런 그림을 그려 놓고 살아 있는 동안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고야의 두 연작은 앞서 따로 다뤘다. 투우 판화는 투우장의 기술과 긴장을, 「로스 카프리초스」는 사회의 위선과 미신을 겨냥했다. 여기 모은 네 점은 그 어느 쪽에도 들지 않는다. 감옥에 갇힌 죄수 둘, 잔혹한 구경거리가 된 눈먼 악사, 그리고 말년의 악몽 한 장이다.

작품연대재료크기
감시가 죄만큼 잔인하다1815년 무렵(1867년 이후 인쇄)에칭, 뷰린11 × 8.8cm
죄가 있다면 빨리 죽게 하라1815년 무렵(1859년 인쇄)에칭11.6 × 8.5cm
잔혹한 구경거리18001804(182867년 인쇄)에칭, 애쿼틴트, 드라이포인트17.7 × 21.9cm
악몽1819~23년 무렵붓, 먹, 담채23.4 × 14.4cm

얼굴 없는 죄수들

감시가 죄만큼 잔인하다이 그림을 퍼즐로 맞춰보기 → 쉬움은 약 5분

「감시가 죄만큼 잔인하다」는 두 팔이 벽의 쇠사슬에 묶이고 발에 족쇄가 채워진 죄수를 그린 작은 판화다. 고야는 1815년 무렵 죄수를 그린 작은 에칭 세 점을 만들었다. 저마다 ‘감시가 죄만큼 잔인하다’, ‘죄가 있다면 빨리 죽게 하라’ 같은 제목을 달아 형벌 제도를 꼬집었다.

죄가 있다면 빨리 죽게 하라

「죄가 있다면 빨리 죽게 하라」는 같은 연작의 다른 한 장이다. 죄수의 목에는 쇠 목줄이 채워져 위쪽 어둠 속으로 사슬이 이어지고, 앞으로 뻗은 발목에는 둥근 볼트가 달린 무거운 쇠고랑이 끼워져 있다. 그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고문에 가까운 감금보다 차라리 빨리 죽여 달라는, 뒤집힌 호소가 제목에 담겼다.

두 판화 모두 죄수의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다. 같은 크기의 감옥 판화 세 점에서 고야는 몸의 자세만으로 고통을 전한다. 얼굴을 가렸으니 죄수가 누구인지는 상관없어지고, 남는 건 형벌 제도 자체의 잔인함이다. 둘 다 생전에 발표되지 않고 나중에 인쇄되었는데, 시기로 보면 「전쟁의 참화」와 같은 어두운 시선에 속한다.

어두운 감방에서 밝은 곳은 죄수의 흰 셔츠뿐이다. 24조각으로 맞추면 그 셔츠 조각 몇 개가 놓이는 순간 인물의 자리가 정해지고, 나머지는 거의 다 어둠이다. 세로 12센티미터 안팎의 작은 판화를 크게 키운 화면이라 그보다 잘게 나눌 까닭이 별로 없다.

사람이 다치는 걸 보며 웃는 구경꾼들

잔혹한 구경거리

「잔혹한 구경거리」는 제목부터 숨기는 게 없다. 검은 소가 눈먼 기타 연주자를 뿔로 들어 올린다. 눈먼 거리 악사를 투우장에 세워 소에게 들이받히게 하던 놀이를 고야가 고발했다.

소가 나온다고 투우 기술을 그린 「타우로마키아」 연작으로 묶으면 안 된다. 이 판화는 「로스 카프리초스」와 「타우로마키아」 사이에 만들어졌고, 그가 죽은 뒤에야 인쇄되었다. 소재는 닮았어도 겨누는 곳이 전혀 다르다. 「타우로마키아」가 투우사의 기술과 용기를 기록했다면, 이 판화는 약자를 다치게 하고 웃는 사회를 향한다. 그 분노가 소의 검은 덩어리와 연주자의 무력한 자세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48조각으로 맞추면 검은 소의 덩어리는 옅은 회색 배경과 확연히 갈려서 금방 선다. 헷갈리는 건 공중에 뜬 연주자다. 소의 검은 몸과 맞닿아 있으니 소 윤곽을 다 두른 뒤에 그 안쪽에서 연주자의 자리를 찾는다.

소리를 잃은 노화가의 악몽

악몽

「악몽」은 판화가 아니고 붓과 먹으로 그린 그림이다. 등에 두 사람을 업은 노파가 힘겹게 걸어간다. 고야는 1819년 무렵부터 청력을 잃은 채 마드리드 근교 ‘귀머거리의 집’에서 화첩에 붓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도 그때 것이다.

늙은이가 젊은이들을 짊어지고 걷는 장면은 세대가 서로에게 지우는 짐이나 악몽 같은 현실로 읽힌다. 판화처럼 세밀하게 새기는 대신 붓으로 빠르게 그은 먹의 농담이 그대로 살아 있다. 나이 든 화가가 혼자, 소리도 듣지 못한 채 그린 마지막 시기의 이미지다.

맞출 때도 이 농담을 본다. 진한 붓질 조각과 옅은 붓질 조각을 두 무더기로 갈라 놓으면 노파와 등에 업힌 두 사람의 윤곽이 진한 쪽에서 먼저 떠오른다. 이 그림도 48조각이면 무난하다. 네 점 모두 어둡고 밀도가 높은 화면이라, 드가와 로트렉 소묘나 고야의 로스 카프리초스에서 쓴 밀도 구분법이 그대로 통한다.

왜 내놓지 않았을까

네 점 모두 고야 생전에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감옥 판화 두 점은 각각 1859년과 1867년 이후에야 인쇄되었고, 잔혹한 구경거리는 1828년에서 1867년 사이에 찍혔다. 악몽은 처음부터 판화가 아닌 개인 화첩의 그림이었다. 스페인의 정치 상황이나 검열, 혹은 소재 자체의 어두움 때문이었을 수 있지만, 이 사이트의 자료로는 정확한 이유를 확인할 수 없다.

분명한 건 하나다. 고야는 누구에게 보여 줄 생각도 없이 가장 어두운 생각을 그림으로 남겼다. 「로스 카프리초스」에서는 위선을 비웃었고 「타우로마키아」에서는 투우의 기술을 기록했지만, 이 네 점에 남은 건 침묵에 가까운 분노다. 발표할 생각조차 없던 그림을 지금 우리가 조각조각 맞추고 있다. 고야가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해진다.

이 글에서 소개한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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