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중시계 뚜껑 속 얼굴, 상아에 그린 초상 세밀화 네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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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가득 확대된 얼굴을 맞추다 보면 원본이 손바닥보다 작다는 걸 잊게 된다. 유럽 회화 부문에 있는 초상 네 점은 캔버스 대신 작은 상아판에 그렸다. 소장처 분류는 모두 “미니어처(Miniatures)”.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유행한 초상 세밀화로, 지름이 6센티미터 안팎밖에 안 된다.
| 작품 | 화가 | 연대 | 크기 |
|---|---|---|---|
| 흰 드레스의 여인 | 자크 들라플라스 | 1805~10년 무렵 | 64 × 55mm |
| 푸른 드레스의 여인 | 프레데리크 뒤부아 | 1780~1819년 활동 | 지름 66mm |
| 모자를 쓴 여인 (흑백) | 오귀스탱 뒤부르 | 1758~1800 | 지름 60mm |
| 레카미에 부인으로 전해지는 여인 | 니콜라 프랑수아 됭 | 1812~14년 무렵 | 60 × 48mm |
이런 초상은 벽에 걸지 않았다. 목에 걸거나 회중시계 뚜껑 안에 넣었고, 이별을 앞두고 상대 손에 쥐여 주기도 했다.
가로 5.5센티미터에 담긴 장미
「흰 드레스의 여인」에서는 검은 곱슬머리를 올린 여성이 흰 드레스에 초록 숄을 두르고 분홍 장미를 들고 있다. 원본 상아판은 가로 5.5센티미터. 화면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작아서, 퍼즐로 키워 놓아야 세부가 보인다.
드레스는 나폴레옹 제정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하이웨이스트 차림이다. 쓰임새가 더 눈길을 끈다. 결혼이나 이별을 앞두고 상대에게 건넸고, 액자 뒤에 머리카락을 넣어 두기도 했다. 자크 들라플라스는 이런 세밀화를 전문으로 그린 파리 화가였다고 하는데, 정작 그림 속 여성이 누구인지는 기록이 없다.
금테와 파란 유리까지 남은 펜던트
「푸른 드레스의 여인」은 둥근 상아판에 흰 머릿수건을 쓴 여인을 그렸다. 프레데리크 뒤부아는 프랑스 혁명 앞뒤로 활동한 세밀화가이고, 이런 둥근 초상은 회중시계 뚜껑이나 펜던트에 넣어 지니고 다녔다.
이 그림에는 실제로 무늬를 새긴 금테와 파란 유리 테두리가 둘려 있고 위에 고리까지 달렸다. 그림 한 장이 원래의 장신구 틀째로 남았다. 제작 시기는 옷차림으로 보아 1790년대 유행에 맞춰 짐작한다.
색이 빠진 사진 속 리본
「모자를 쓴 여인」은 리본 달린 큰 모자를 쓰고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여인이다. 미술관 이미지는 흑백인데, 그 모자와 머리 모양이 1780년대 후반 유행이라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화가 오귀스탱 뒤부르는 남긴 작품이 많지 않다.
색이 없어도 읽을 건 남는다. 모자 리본, 드레스의 광택, 얼굴의 부드러운 명암이 그대로다. 형태와 명암만 있으면 유행도 화가의 솜씨도 전해진다.
레카미에 부인이라는 소문
「레카미에 부인으로 전해지는 여인」은 흰 레이스 보닛을 쓴 여인의 타원형 초상이다. 쥘리에트 레카미에는 나폴레옹 시대 파리 사교계에서 가장 이름난 여성이었고, 다비드와 제라르가 그린 초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니 이름이 붙을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작은 그림 속 인물이 정말 그녀인지는 전해지는 말일 뿐 확인되지 않았다. 유명한 이름이 붙어 있다고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화가 니콜라 프랑수아 됭은 나폴리에서 활동한 프랑스 세밀화가로, 레이스와 곱슬머리를 가는 붓으로 꼼꼼히 그렸다.
네 점 가운데 신원이 확실한 인물은 하나도 없다. 레카미에 부인조차 “전해질” 뿐이다. 그런데 옷차림과 머리 모양만으로 제작 시기는 1780년대부터 1810년대까지 꽤 촘촘하게 짚어 낼 수 있다. 이름은 사라지고 유행은 남았다. 이름 없는 왕족 조각과도 닮은 사정이다.
흑백 초상에서 더뎌진다
상아판이 크게 확대되는 만큼 세밀화의 섬세한 붓질이 큰 조각 하나하나에 드러난다. 얼굴과 머리 장식은 초상화 퍼즐 가이드에서 말한 대로 먼저 자리를 잡고, 「푸른 드레스의 여인」의 금테와 유리 테두리는 휘는 정도를 보고 둘레 어디쯤인지 가늠한다. 흰 레이스나 리본 주름은 오히려 조각마다 결이 달라서 서로 가리기 쉽다.
제일 더딘 건 「모자를 쓴 여인」이다. 색이 없으니 모자 리본도 드레스의 광택도 회색의 밝기로만 나뉜다. 드가와 로트렉 소묘에서 다룬 밀도 구분법이 여기서 쓸모 있다. 원화가 손바닥보다 작은 그림들이라 퍼즐도 24조각이나 48조각으로 작게 잡는 게 어울린다.
큰 초상화가 벽에 걸려 여러 사람이 오래 보는 그림이라면, 이 세밀화들은 한 사람이 몸에 지니던 그림이다. 드루에가 그린 파리의 여인들이 초상으로 신분을 남기는 쪽이었다면, 이 네 점은 초상이 얼마나 사적이고 은밀한 물건이 될 수 있었는지 보여 준다. 18~19세기 프랑스 사람들은 얼굴을 벽에도 걸었고 주머니에도 넣었다. 누군가의 손바닥 안에서 수없이 열리고 닫혔을 시계 뚜껑을 생각하면, 이 작은 얼굴들이 퍽 다정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