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집가가 남긴 천 년, 켈레키안 유증품 다섯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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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명 끝의 소장 경위 줄에 “낸넷 켈레키안 유증, 2020년”이라고 적힌 물건이 「중세 미술」에 다섯 점 있다. 한 수집가가 세상을 떠나며 미술관에 남긴 것들이다. 그런데 이 다섯 점은 시대도 문화권도 재료도 하나같이 다르다. 6세기 비잔틴 상아에서 16세기 플랑드르 회양목까지, 다섯 점 사이에 천 년이 벌어져 있다.
| 작품 | 문화권 | 시대 | 재료 |
|---|---|---|---|
| 기적을 새긴 상아 조각 | 비잔틴 | 6세기 | 코끼리 상아 |
| 연인을 새긴 뼈 판 | 로마 말기/비잔틴 초기 | 4~6세기 | 뼈 |
| 약병 | 스페인 | 14세기 | 주석 유약 도기 |
| 성모자 소상 | 프랑코-네덜란드 | 16세기 초 | 회양목 |
| 베드로와 바울 판 | 비잔틴 | 14~15세기 | 검은 활석 |
지중해 세계의 초기 기독교 미술, 후기 비잔틴, 이슬람 지배기의 스페인, 북유럽 르네상스. 한 사람의 수집품이 이만큼 넓은 시간과 땅에 걸쳐 있다. 켈레키안의 눈은 한 시대에 오래 머물지 않았던 모양이다.
성체 상자에 새긴 기적
다섯 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기적을 새긴 상아 조각」이다. 픽시스는 성체(성찬의 빵)를 담아 두던 작은 원통 상자다. 초기 비잔틴 시대에는 코끼리 상아로 만들고 겉에 성경 장면을 새겼다.
이 조각에 새긴 장면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군중을 먹인 기적이다. 성체와 뜻이 통하니 이런 상자에 잘 맞는 주제였을 것이다. 남은 건 원통 상자의 일부뿐이지만, 옷을 늘어뜨린 인물들의 자세에는 로마 후기 조각의 옷 주름 표현이 그대로 이어진다.
상아 대신 뼈로
「연인을 새긴 뼈 판」은 손바닥만 한 판이다. 여인이 남자의 어깨에 기대고, 남자는 그녀를 감싸 안았다. 이런 판은 나무 상자의 겉을 꾸미던 것으로 4~6세기 지중해 세계에서 널리 만들어졌다. 신화 속 연인이나 부부를 새긴 판은 혼례 선물 상자에 붙였으리라는 추정도 있다.
앞의 상아와 견주면 재료의 격이 다르다. 상아보다 싼 뼈를 썼다는 건 일상의 물건이었다는 뜻이다. 같은 시대 같은 지중해 세계에서도 성스러운 물건은 상아로, 일상의 선물은 뼈로 만들었다.
약국 선반의 항아리
「약병」은 다섯 점 중 하나뿐인 세속의 실용품이다. 초록 잎 달린 덩굴과 사람이 그려진 원통형 도기로, 약국에서 약초와 연고를 담았다. 선반에 나란히 세우고 손으로 쥐기 좋게 만들었다.
흰 유약 위에 구리(초록)와 망간(갈색) 두 색만으로 그리는 방식은 발렌시아 지방 파테르나 도기의 특징이다. 인물의 옷과 몸짓에서 당시 스페인의 이슬람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뒤섞인 흔적을 읽는 해석도 있다. 14세기 스페인이 이 평범한 약병 하나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손가락만 한 성모
「성모자 소상」은 다섯 점 중 시기가 가장 늦다. 높이 9센티미터로, 회양목을 깎았다. 회양목은 결이 아주 촘촘해서 손가락만 한 조각에도 얼굴 표정과 옷 주름을 새길 수 있었다. 16세기 초 플랑드르와 프랑스에서 묵주 알이나 작은 성상을 만들 때 이 나무를 썼다.
책상이나 침실에 두고 혼자 기도할 때 쓰던 소상이다. 몸을 살짝 S자로 비튼 자세는 고딕 말기 성모상의 전형이다. 채색을 하지 않아 나무의 결과 색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도 이 시기 회양목 조각에서 흔히 보인다.
품에 지니던 성상
「베드로와 바울 판」은 다섯 점 중 가장 늦은 비잔틴 미술이다. 검은 활석에 두 성인을 나란히 새겼다. 활석은 무르고 검은 돌이라 작은 부조에 알맞았고, 비잔틴 제국 말기에는 개인이 지니고 다니는 작은 성상의 재료로 널리 쓰였다.
베드로와 바울을 나란히 세우는 구성은 교회의 두 기둥을 뜻하는 오래된 형식이다. 옷 주름과 글자체에서 14~15세기, 비잔틴 미술의 마지막 시기가 보인다. 제국이 저물어 가던 무렵 누군가 품에 넣고 다니던 작은 신앙의 증표다.
바탕색이 다섯 가지
다섯 점 모두 작고 표면이 단색에 가까워서 중세의 작은 보물들에서 이야기한 방법이 그대로 통한다. 누런 상아, 회색빛 뼈, 흰 유약, 나무색 회양목, 검은 활석. 재료마다 바탕색이 뚜렷해 조각을 색으로만 갈라 놓아도 섞일 일이 드물다. 부조의 볼록한 곳에는 그림자가 지니, 인물 윤곽을 따라 그 그림자 조각부터 이어 붙이면 평평한 배경은 남은 자리에 들어간다.
손이 멈추는 건 약병이다. 둥근 항아리를 평면으로 찍은 사진이라 덩굴무늬가 가장자리로 갈수록 휘어 보인다. 잎 방향만 보고 놓으면 자꾸 어긋나서, 줄기의 곡선을 이어 가며 맞추게 된다. 물건이 작으니 24조각이나 48조각 정도로 크게 잘라야 조각마다 새긴 선이 뭉개지지 않는다.
나란히 놓인 천 년
같은 유증에서 나왔다고 서로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한 줄로 세워 두면 이야기가 생긴다. 성체 상자에서 혼례 선물로, 약국의 항아리에서 혼자 기도할 때 보던 성모상으로, 그리고 품에 지니던 작은 성상으로. 중세 사람들이 크고 작은 물건에 믿음과 쓰임을 함께 담은 건 아일랜드 성물 복제품이나 비잔틴 금화에서도 마찬가지다.
6세기에서 16세기까지, 지중해 동쪽에서 서유럽까지 흩어진 다섯 점이지만 하나같이 작다. 높이 9센티미터 성모상을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이 천 년을 큰 제단화 대신 품에 드는 물건들로 읽어 냈다는 게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