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은 못 되었지만 시에나가 기억한 두 복자, 조반니 디 파올로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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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박 아치 안에 검은 모자와 검은 망토 차림의 여윈 남자가 서 있다. 그 옆 패널에는 흰 수도복에 검은 망토를 걸치고 붉은 책을 든 남자가 있다. 둘 다 교회가 공식으로 인정한 성인은 아니다. 그래도 고향 시에나 사람들은 이들을 잊지 않았다. 복자(福者, beato)라고 불리는 안드레아 갈레라니와 암브로조 산세도니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를 그린 초상 세 점의 베르나르디노가 공인된 성인이라면, 이 두 사람은 그 한 단계 아래에서 고향의 공경을 받았다.
| 작품 | 인물 | 생몰 | 크기 |
|---|---|---|---|
| 복자 안드레아 갈레라니 | 시에나의 귀족, 병원 설립자 | ~1251년 사망 | 51.4 × 17.8 cm |
| 복자 암브로조 산세도니 | 도미니코회 수도사 | 1220~1286 | 52.4 × 17.8 cm |
두 패널 모두 조반니 디 파올로가 나무에 템페라와 금박으로 그렸다. 크기도 거의 같고 폭은 17.8cm로 똑같아서, 원래 한 제단화의 좌우에 나란히 걸렸던 짝이라는 짐작이 간다.
성인과 복자의 차이
‘성인(saint)‘은 교회가 공식 절차를 밟아 인정한 인물이다. ‘복자’는 그보다 한 단계 낮다. 정식 시성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아직 마치지 못한 인물을, 특정 지역이나 공동체가 스스로 공경하는 경우다. 온 나라가 아는 위인과, 고향에서만 각별히 기리는 지역 인물의 차이쯤으로 보면 얼추 맞다.
병원을 세운 귀족
「복자 안드레아 갈레라니」의 주인공은 13세기 시에나의 귀족이다. 병원을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본 덕에 복자로 공경받았다. 귀족이면서 가난한 이들 곁에 섰다는 점이 고향 사람들의 마음을 샀다.
조반니 디 파올로는 15세기 시에나에서 가장 개성 있는 화가로 꼽힌다. 길고 마른 몸, 날카로운 얼굴이 그의 인물들의 특징인데, 여윈 얼굴에 검은 옷을 입은 갈레라니에게서 그 화풍이 그대로 보인다.
설교와 외교의 수도사
「복자 암브로조 산세도니」는 13세기 시에나의 도미니코회 수도사다. 설교와 외교로 이름을 얻어 고향에서 복자로 공경받았다.
흰 수도복과 검은 망토는 도미니코회의 정해진 옷차림이다. 정수리를 깎은 머리, 아래로 떨군 시선, 손에 든 붉은 책은 학식 있는 수도사를 그릴 때 흔히 쓰던 도상이다. 갈레라니가 세속에서 자선으로 존경을 얻었다면, 산세도니는 교회 안에서 말과 협상으로 이름을 남겼다.
짝으로 그려진 두 사람
두 패널이 짝이라는 건 소장처 설명에도 분명히 적혀 있다. 갈레라니 쪽 설명은 이 패널이 같은 미술관의 「복자 암브로조 산세도니」와 짝을 이루며, 시에나의 지역 성인들을 모신 제단화의 일부였다고 한다. 산세도니 쪽은 갈레라니와 한 쌍으로, 시에나가 자기 성인들을 얼마나 아꼈는지 보여 준다고 짚는다.
귀족 출신 자선가와 수도사 출신 외교가. 신분도 살아온 길도 달랐던 두 사람이 같은 제단화에 나란히 그려졌다. 시에나가 고향 사람을 기리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끝내 성인이 되지 못한 까닭
두 사람이 왜 끝내 정식 성인이 되지 못했는지는 여기 있는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다. 시성 절차는 오래 걸리고 정치 사정에도 휘둘렸으니, 자격이 모자라서였다기보다 여러 사정이 겹쳤을 가능성이 크다. 시에나 사람들은 공식 인정을 기다리지 않았다. 제단화에 그려 넣는 일 자체가 지역의 공경을 드러내는 한 방식이었다.
검은 옷과 금박의 경계부터
두 패널은 구도가 닮았다. 금박 바탕, 좁고 긴 화면, 검은 옷의 인물. 검은 옷과 금박이 만나는 경계 조각부터 맞추면 인물의 실루엣이 먼저 선다. 그다음은 소품으로 두 사람을 가른다. 갈레라니는 앞으로 내민 빈손이, 산세도니는 손에 든 붉은 책이 눈에 띈다. 위쪽의 뾰족한 아치와 아래쪽 무늬 있는 바닥으로 구조선을 잡아 두면 화면 전체가 정리된다.
금박은 금박 패널화 퍼즐 가이드에서 말한 대로 인물을 다 맞춘 다음 후광 둘레에서 바깥으로 채워 나간다. 폭이 좁고 세로로 긴 그림이라 격자도 홀쭉하게 나온다. 24조각이나 48조각으로 자르면 한 줄에 조각이 몇 개 안 돼서, 금박만 든 조각은 아치 곡선이 걸쳤는지를 보고 위아래를 가른다.
고향이 기억하는 사람들
성인은 못 되었어도 두 사람은 자기가 나고 자란 도시의 제단화 위에서 몇 세기를 버텼다. 흩어진 제단화 패널에서 다룬 것처럼 큰 제단화가 낱장으로 팔려 나가던 시절에도, 이 짝은 흩어지지 않고 함께 남았다. 공식 명단에 이름이 오르는 일보다 한 도시 사람들의 꾸준한 애정이 더 오래가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