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몰라 대표작에서 따온 이름, 오르카냐의 그림자 아래 피렌체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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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냐풍 자비의 성모 화가.” 사람 이름치고는 너무 길고, 설명문치고는 너무 짧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피렌체 패널 한 점에 붙은 화가 이름이 이렇다. 이름이 전하지 않는 화가를 미술사가들이 어떻게 부르는지 보여 주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 화가와, 그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오르카냐, 그리고 같은 전통 안에서 그린 화가들의 제단화 네 점을 1365년부터 1435년까지 70년에 걸쳐 따라가 본다.
| 작품 | 화가 | 연대 |
|---|---|---|
| 십자가 처형 | 오르카냐(안드레아 디 초네) | 1365년 무렵 |
|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의 환시 | 오르카냐풍 자비의 성모 화가 | 1365~70년 무렵 |
|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마리아, 요한 | 로렌초 모나코 | 1406년 무렵 |
| 세례자 요한과 복음사가 | 비치 디 로렌초 | 1433~35년 |
조토 다음의 피렌체, 오르카냐
「십자가 처형」은 이 컬렉션의 초기 이탈리아 그림 가운데 가장 큰 패널이다. 안드레아 디 초네, 별명 오르카냐는 조토 이후 피렌체 회화를 이끈 사람으로, 화가이면서 조각가이자 건축가였다.
한가운데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둘레로 천사들이 날며 피를 받아 낸다. 양옆 세로 띠에는 성인들이 한 칸씩 들어앉았고, 위쪽 장식에는 펠리컨까지 있다. 자기 피로 새끼를 먹인다고 믿어 그리스도의 상징이 된 새다. 이 모든 걸 한 화면에 담은 구성이 14세기 제단화의 꼴을 잘 보여 준다.
대표작에서 빌려 온 이름
오르카냐는 이름을 또렷이 남겼지만 같은 시대, 같은 도시의 다른 화가는 이름 한 자 남기지 못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의 환시」를 그린 사람이 그렇다.
“오르카냐풍 자비의 성모 화가”는 이름이 전하지 않아 대표작에서 따온 호칭이다. 미술사가들은 이 화가의 대표작 「자비의 성모」와, 오르카냐를 닮은 화풍을 근거로 이 길고 설명적인 이름을 지어 붙였다. 패널은 세로 21센티미터로 작다. 큰 제단화 아래쪽 띠(프레델라)에 늘어선 여러 장면 가운데 하나였던 듯하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가 환시 속에서 아기 예수와 신비로운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의 한 장면을 담았다.
액자째 남은 기도용 그림, 로렌초 모나코
40년쯤 지나 로렌초 모나코가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마리아, 요한」을 그렸다. 십자가 아래 마리아와 요한이 선 장면은 중세 이래 가장 흔한 기도용 그림으로, 수도원 방이나 성당 옆 제단에 걸렸다.
이 패널은 액자가 귀하다. 당시 것이 함께 남아 있어서 처음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다. 뾰족한 지붕과 기둥을 갖춘 금박 액자가 그림과 함께 온전히 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마리아의 망토가 아래로 길게 흘러내리는 곡선은 로렌초 모나코의 손버릇인데, 로렌초 모나코의 성탄 장면에서도 같은 곡선을 찾을 수 있다.
공방에서 쏟아져 나온 제단화, 비치 디 로렌초
가장 늦은 「세례자 요한과 복음사가」는 1433~35년에 비치 디 로렌초가 그렸다. 세례자 요한은 피렌체의 수호성인이라 이 도시 제단화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비치 디 로렌초는 피렌체에서 큰 공방을 꾸리며 15세기 초 교회 제단화를 대량으로 만들어 냈다.
이 패널은 세 폭 제단화의 한쪽 날개였다. 오르카냐가 조토 다음 세대를 이끈 거장이었다면, 비치 디 로렌초는 그 전통이 단단히 자리 잡은 뒤 큰 공방에서 제단화를 찍어 내듯 만들던 시대의 화가다. 70년 동안 피렌체 회화가 어디로 왔는지가 여기서 보인다.
금박 사이에서 길 찾기
넷 다 금박 바탕에 인물이 중심이라, 어느 그림이든 마지막까지 남는 건 금박 조각이다. 금빛만 덩그러니 찍힌 조각은 서로 구분이 안 되니 천사나 후광, 십자가가 한 귀퉁이라도 걸린 것부터 채우고, 아무것도 안 걸린 금박은 끝으로 미룬다.
오르카냐는 요소가 많아서 300조각까지 즐길 만하다. 십자가의 세로 직선과 양옆 세로 띠의 칸 테두리로 틀을 먼저 잡고, 아래 인물들은 붉은색, 푸른색, 흰색 옷으로 무리를 나눈다. 이름 없는 화가의 작은 패널은 48조각이면 넉넉하다. 분홍 옷, 푸른 망토, 붉은 지붕, 금박 벽으로 색 구역이 갈리니 두 여인과 아기의 얼굴부터 맞추고 방의 직선으로 가운데를 세운다.
로렌초 모나코와 비치 디 로렌초는 둘 다 100조각 정도로 한다. 로렌초 모나코 쪽은 금박 액자의 기둥과 뾰족한 지붕으로 바깥 틀을 세운 다음 십자가의 직선, 푸른 망토, 분홍 옷을 차례로 맞춘다. 비치 디 로렌초 쪽은 붉은 망토와 푸른 망토가 좌우를 뚜렷이 가르니, 두 얼굴과 요한의 두루마리, 복음사가의 책을 먼저 놓고 망토는 주름 방향을 따라 잇는다.
남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화가
넷을 나란히 놓으면 묘한 대비가 생긴다. 오르카냐는 이름이 또렷한데, 그를 닮은 무명 화가는 그 이름을 빌려서야 불린다. 로렌초 모나코와 비치 디 로렌초는 제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둘 다 오르카냐가 세운 피렌체 제단화 전통 안에 서 있다. 오르카냐라는 이름은 그 자신을 가리키면서, 이름을 잃은 다른 화가를 부르는 데도 쓰이고 있다.
이런 프레델라 조각들은 흩어진 제단화 패널에서 본 것처럼 큰 제단화에서 떨어져 나와 저마다 다른 길을 걸었다. 「카타리나의 환시」를 그린 사람은 끝내 이름을 되찾지 못했다. 그래도 세로 21센티미터짜리 그 작은 판은 거장의 그림자에 기대서라도 기억되고, 70년을 사이에 둔 다른 세 점과 지금 한 화면에서 다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