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레이크스뮤지엄에 가면 꼭 볼 명화 1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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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야경」을 보러 갔다가 정작 페르메이르의 작은 그림 앞에서 더 오래 서 있게 되는 곳. 암스테르담 박물관 광장의 레이크스뮤지엄이다. 네덜란드의 국립미술관이라 우리말로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의 건물은 1885년에 문을 열었고, 10년 가까운 공사를 마치고 2013년에 다시 열었다. 소장품은 100만 점에 이르지만 여행자 대부분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회화를 보러 온다.
레이크스뮤지엄은 저작권이 끝난 소장품 이미지를 누구나 내려받게 풀어 두었다. 덕분에 대표작 16점을 퍼즐로 옮겨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작품 모음에 모을 수 있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꼭 볼 명화 12점과 같은 식으로 골랐고, 아래 표가 그 목록이다.
| 작품 | 화가 | 연도 | 크기(cm) |
|---|---|---|---|
| 야경 | 렘브란트 | 1642 | 363 × 437 |
| 직물 길드의 감독관들 | 렘브란트 | 1662 | 191.5 × 279 |
| 유대인 신부 | 렘브란트 | 1665~69년 무렵 | 121.5 × 166.5 |
| 사도 바울로 분한 자화상 | 렘브란트 | 1661 | 91 × 77 |
| 우유를 따르는 여인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 1660년 무렵 | 45.5 × 41 |
| 작은 거리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 1658년 무렵 | 54.3 × 44 |
|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 1663년 무렵 | 46.6 × 39.1 |
| 연애편지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 1669~70년 무렵 | 44 × 38.5 |
| 즐거운 술꾼 | 프란스 할스 | 1628~30년 무렵 | 81 × 66.5 |
| 성 니콜라스 축일 | 얀 스테인 | 1665~68 | 82 × 70.5 |
| 즐거운 가족 | 얀 스테인 | 1668 | 110.5 × 141 |
| 어머니의 의무 | 피터르 더 호흐 | 1660~61년 무렵 | 52.5 × 61 |
|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이 있는 겨울 풍경 | 헨드릭 아베르캄프 | 1608년 무렵 | 77.3 × 131.9 |
| 베이크 베이 뒤르스테더의 풍차 | 야코프 판 라위스달 | 1668~70년 무렵 | 83 × 101 |
| 위협받는 백조 | 얀 아설레인 | 1650년 무렵 | 144 × 171 |
|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 빈센트 반 고흐 | 1887 | 42 × 34 |
크기를 같이 적은 데는 이유가 있다. 「야경」은 가로 4미터가 넘고, 페르메이르는 넷 다 한 변이 50센티미터 안팎이다. 화면으로만 보던 그림 앞에 서면 이 차이에 가장 먼저 놀란다.
「야경」에서 사도 바울까지, 렘브란트의 30년
「야경」은 암스테르담 화승총 민병대가 자기들 회관에 걸려고 주문해 1642년에 완성된 단체 초상화다. 붉은 띠를 두른 대장 프란스 바닝 코크와 노란 옷의 부관이 부대를 이끌고 나서는 순간을 그렸다. 단체 초상화는 보통 사람들을 나란히 세웠는데, 렘브란트는 출동 직전의 움직임으로 바꿨다. 제목과 달리 낮 장면이다. 바니시가 어둡게 변한 뒤에 밤 그림으로 보여 붙은 이름이다. 1715년 시청으로 옮길 때 벽에 맞추느라 가장자리, 특히 왼쪽이 잘려 나갔다. 2019년부터는 관람객이 보는 앞에서 조사와 복원 작업을 하고 있어, 유리 칸막이 너머로 작업 중인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20년 뒤의 「직물 길드의 감독관들」은 렘브란트가 그린 마지막 단체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 탁자에 둘러앉은 감독관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들어 이쪽을 봐서, 회의 중인 방에 막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말년의 「유대인 신부」는 남자의 금빛 소매를 붓과 팔레트 나이프로 두껍게 덧발라 그렸다. 반 고흐가 이 그림 앞을 오래 떠나지 못했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파산 뒤에 그린 「사도 바울로 분한 자화상」까지 네 점을 이어 보면 렘브란트의 30년이 보인다.
한 미술관에 페르메이르가 네 점
세계에 서른몇 점밖에 없는 페르메이르가 한 미술관에 네 점이나 있다. 부엌 창가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 델프트의 골목을 그린 「작은 거리」, 지도 앞에서 편지를 읽는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문간 너머로 들여다보는 「연애편지」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은 1908년 레이크스뮤지엄이 사들였고, 「연애편지」는 1971년 브뤼셀 전시 중 도난당해 화폭이 칼로 잘려 나갔다가 되찾아 복원되었다. 1658년 무렵의 「작은 거리」에서 1669~70년 무렵의 「연애편지」까지, 이 네 점은 페르메이르 그림 8점을 그린 순서대로 놓아 보면 다른 미술관의 네 점 사이사이에 끼어든다.
건배하는 술꾼과 우는 아이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만 보고 나오기에는 아까운 같은 시대 그림들이 있다. 프란스 할스의 「즐거운 술꾼」은 붓 자국을 감추지 않고 빠르게 그어 막 건배하려는 한순간을 잡았다. 얀 스테인의 「성 니콜라스 축일」은 12월 5일 저녁 선물을 받고 웃는 아이와 신발에 회초리만 받고 우는 아이를 한 방에 넣었다. 같은 화가의 「즐거운 가족」은 어른을 따라 담뱃대를 무는 아이를 그린 속담 그림이다. 피터르 더 호흐의 「어머니의 의무」는 페르메이르와 같은 시대 네덜란드의 집 안을 다르게 보여 준다.
네덜란드의 땅과 물과 하늘
헨드릭 아베르캄프의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이 있는 겨울 풍경」은 언 수로 위에서 수많은 사람이 노는 장면을 그렸다. 인물이 작고 많아서 오래 들여다볼수록 이야기가 나온다. 야코프 판 라위스달의 「베이크 베이 뒤르스테더의 풍차」는 지평선을 낮게 깔아 풍차가 먹구름 속으로 솟아 보이게 했다. 얀 아설레인의 「위협받는 백조」는 레이크스뮤지엄의 전신이 맨 처음 사들인 그림이다.
마지막으로 반 고흐. 같은 광장에 반 고흐 미술관이 따로 있지만, 레이크스뮤지엄에도 파리 시절의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이 있다. 판지에 그린 42×34센티미터의 작은 그림이다.
그 그림이 전시실에 없을 수도 있다
대표작이라도 대여나 복원 때문에 자리를 비울 때가 있다. 레이크스뮤지엄 웹사이트의 작품 페이지에서 지금 걸려 있는지 보고 가면 헛걸음을 덜 한다. 17세기 대표작은 2층 명예의 전당(Gallery of Honour)과 그 둘레에 모여 있으니, 시간이 빠듯하면 2층부터 올라간다. 반 고흐 미술관과 같은 날 묶어 갈 생각이라면 두 곳 모두 입장 시간을 미리 정해 둬야 일정이 꼬이지 않는다.
「야경」의 갈색은 맨 나중에
16점 가운데 첫 판으로는 색이 또렷한 「위협받는 백조」와 「어머니의 의무」가 좋다. 약 48조각으로 잘라도 백조의 흰 날개 같은 큰 덩어리가 금방 모인다. 「야경」과 「유대인 신부」는 어두운 갈색이 화면을 넓게 덮고 있어서 막히는 자리가 분명하다. 「야경」이라면 노란 옷의 부관과 붉은 띠를 두른 대장부터 이어 붙이고, 갈색 어둠은 맨 끝에 남은 조각끼리 맞춘다. 넓은 단색 구간을 다루는 요령은 단색 배경 공략에 있다.
미술관에서 그림 앞에 서는 시간은 길어야 몇 분이다. 그래도 퍼즐로 한 번 맞춰 본 그림은 그 몇 분 동안 보이는 게 다르다. 「야경」에서 북을 치는 사람이 어디 있었는지, 「우유를 따르는 여인」의 벽 어디에 못 자국이 있었는지 손이 먼저 알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레이크스뮤지엄에서 꼭 봐야 할 그림은 무엇인가요?
가장 유명한 것은 렘브란트의 「야경」이고,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 「작은 거리」,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 프란스 할스의 「즐거운 술꾼」이 함께 꼽힙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대표작은 2층 명예의 전당(Gallery of Honour) 둘레에 모여 있습니다.
레이크스뮤지엄과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같은 곳인가요?
같은 곳입니다. 네덜란드어 이름 Rijksmuseum을 옮긴 것이 레이크스뮤지엄이고, 뜻을 옮기면 국립미술관입니다. 반 고흐 미술관은 같은 박물관 광장에 있는 다른 미술관입니다.
「야경」은 왜 밤 그림이 아닌데 「야경」이라고 부르나요?
그림 위에 칠한 바니시가 세월이 지나며 어둡게 변하자 밤 장면으로 보여 붙은 이름입니다. 실제로는 민병대가 낮에 출동하는 장면입니다.